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88)

6부 4장 귀양

사대부는 준비도 없이 오랑캐를 무시하니 훗날의 비극이 손에 잡힐 듯이 감지되었다. 정충신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아, 답답한 일이다. 세상의 흐름을 이렇게도 모르다니...”

정충신은 이윽고 유배길에 나섰다. 떠나는 길목마다 이별 인사를 받느라 한강에 이르자 어느새 황혼녘이었다. 그는 나루터 객주집에 들었다. 서녘으로 비껴가는 노을이 한강물을 적시고 있었다. 붉게 물든 강물을 바라보니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다. 객주집 사람들이 그를 보고 웅성거렸다.

“병신같은 나라여. 충신은 때려잡고 간신배가 떵떵거리니 나라가 개판이여. 후금국이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조선도 타작한다고 하는데, 명장을 모략으로 잡아버리니 누가 나라를 일으켜 세울겨?”

“최명길 대감이 움직인다는 말이 들리던데, 그가 힘이 있을까?”

그 소문은 헛소문이 아니었다. 최명길이 부산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김시백을 만나니 김시백이 사헌부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사헌부가 상감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정충신은 삭풍 몰아치는 북녘의 최일선에서 병졸을 지휘하여 싸우는 명장으로서 체찰사인 김시양과는 그 책임의 한계가 달라 죄의 경중도 구별해야 합니다. 충신에게 중도부처는 그의 공적에 비해 가혹한 것입니다. 청컨대 충신에게 내린 중도부처의 명을 거두어 주시고, 다시 서북 국경에 충군(充軍)하게 하소서. 매서운 적에게는 그만한 자가 없습니다.”

최명길도 어전에 나가 아뢰었다.

“정충신은 나라의 위급함을 구한 공이 있습니다. 변경이 또 위급한데 그를 세워야 합니다.”

왕이 듣고 말했다.

“과인도 알고 있다. 그것을 참작하여 벌한 것이니 번거롭게 떠들지 말라.”

충청도 당진 유배도 생각해서 내린 조치라는 것이다. 하긴 당진은 물산이 풍부한 곳이다. 관북지방이나 강원도보다 춥지 않을뿐더러 곡기를 채울 양식이 많은 곳이다. 그곳을 배려한 것도 왕의 갸륵한 뜻이라는 것이다.

“마마, 돌이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를 빼내 다시 전선으로 보내야 하옵니다.”

최명길의 간청이 간절한지라 왕이 정충신에게 금부에 나아가 대기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 비망기(備忘記:임금의 명령을 승지에게 내린 교지)를 내렸다.

-충신은 여러날 옥중에 있었으니 지난날에 앓던 잔병이 재발될 수 있다. 우선 풀어주니 제 집에서 몸조리하다가 이레(7일) 후 귀양처로 떠나도록 하라.

이레 동안 몸조리를 하고 유배지로 가라는 것이다. 하나마나한 선심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한 은혜로 받아들여져 그를 따르는 중신들이 감읍했다. 정충신은 집에 돌아와 평소와 같이 지내다 이틀 먼저 집을 나와 충청도로 향했다. 공연히 기분만 잡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떠나면 싱숭생숭한 마음도 다잡을 수 있는데 배고픈 사람 밥그릇 빼앗는 거와 같으니 허접한 기분이었다. 나흘 후 덕산(예산)에 도착했다. 충청병사 구인후가 산마루까지 나와 기다렸다가 그를 맞았다.

“영감, 이것이 무슨 낭패요.”

정충신이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그를 호송하는 의금부 관원들은 첩자들이고, 불만의 말이 자칫 공훈을 세우기 위해 과장되고 확대되어 보고되기 마련이다. 말 한마디에 골로 가는 수가 있다. 구인후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것은 수년 전 함께 종군했던 추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장담컨대 복권이 될 것이요. 그러니 건강을 지키시오.”

그리고 의금부 관원들에게도 일렀다.

“정 장수는 오해가 풀리면 복권되고, 반드시 중책을 맡을 것이다. 그러니 잘 모셔야 할 것이다. 너희들 장래도 이분 지체에 얼마만큼 정성을 쏟느냐에 달렸다. 알겠느냐?”

그러나 관원들은 시덥지 않다는 태도였다. 자고로 귀양지로 떠나는 사람은 복권되어도 옛 권력을 찾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를 제거한 세력이 견고한 기득권의 벽을 쌓는데 어떻게 그 벽을 뚫고 나갈 것인가.

3월 7일에 귀양지인 당진에 도착했다. 당진군수 이영인이 그를 맞으면서 귀양지에서 쓸 살림도구 일습을 마련해주었다. 그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영감이 명예회복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최명길, 김시백이 움직이면 난신들은 좆이 돼버릴 것입니다.”

“당치않은 말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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