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89)
6부 4장 귀양

입안의 혀처럼 말하고 위로하고 동정했다가도 사세가 불리하면 언제 배신 때릴지 모른다. 그것이 오랜 관가의 습속이다. 자기 살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데, 굳이 말하면 그것은 나라가 만들어준 나쁜 생존법이었다. 구인후가 사람을 보내 쌀과 콩, 말린 조기와 쭈꾸미, 미역가닥을 보내왔다. 무료를 달래라고 종이와 붓과 먹을 보내주었다. 밤이 깊어 바람이 드센 가운데 숲이 스적거리는데, 문밖에서 신발을 터는 인기척이 났다.

“뉘시오?”

정충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향해 묻자 바로 토방 섬돌에서 에헴, 기침소리가 났다. 그리고 나직하나마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양에서 왔소. 들어가도 되겠소? 알만한 사람이오.”

문을 열어주자 뜻밖에도 장골의 이시백이었다.

“아니, 조암(이시백의 호)이 아니오? 어떻게 이렇게 외진 곳을...”

“섭섭해서 어찌 가만 있겠소. 억울한 사람을 그냥 두면 병이 덧나오이다.”

이시백은 정충신이 유배 가는 것이 부당하다는 최명길의 말을 전해듣고 사헌부에 들어가 유배형을 막으려 했으나 며칠 날짜를 버는 것으로 끝났다. 그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이시백은 정충신과 함께 안현전투를 승리로 이끈 사이였다. 이때 정충신을 형처럼 따랐다. 그는 도성 안에서도 수문난 명문의 자제였다. 그의 아버지 이귀는 김류와 함께 인조반정의 핵심 공로자였으며, 6대조 이석형은 세종과 성종 시기, 영중추부사(정1품)로 좌리공신(임금을 잘 보필하고 정치를 잘한 공로로 신숙주 한명회 등 75명에게 내린 훈명)에 책록되고, 증조부 이기는 좌찬성, 조부 이정화는 영의정을 지내 조선 시대 양반가문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가대였다. 그의 동생 이시방은 공조판서, 판의금부사를 지냈다.

그러나 그는 조선의 정치에 불만이 많아 벼슬에 뜻이 없었다. 그래서 과거 시험에 나서지 않고 40세까지 포의유생(布衣:베옷. 벼슬이 없는 선비의 비유적 표현)으로 지냈다. 그의 아버지 이귀가 최기(崔沂)의 옥사(1616년 최기가 해주목사로 있을 때 계축옥사에 관련되어 해서(海西)로 모여든 도당을 회유하여 돌려보냈는데, 그 과정에서 이이첨 일파인 박희일, 박이빈을 무고죄로 처형함으로써 이이첨의 미움을 사 남형죄(濫刑罪)로 처형된 사건)에 연루되어 경상도 산골 이천(伊川)으로 귀양 가자 더욱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평생 은거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정충신보다 다섯 살이 아래였지만 명문 출신답지 않게 그는 이념과 노선이 달라도 정충신과 허물없이 지냈다. 이괄의 난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이시백은 정충신의 지략과 용맹성, 부하를 다루는 마음을 지켜보며 사형(詞兄)으로 삼았다.

두 사람은 모처럼 등잔불을 앞에 두고 지나온 날들을 추억했다.

“나는 정 장수가 적을 무찌를 때, 어떻게 하면 사람이 다치지 않게 하여서 승리로 이끄느냐를 보고 감탄했지요. 물론 이괄의 군사가 적이 아니라 우리 군사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들을 선무하여 아군 진영으로 오도록 한 것이 결국 아군이 이괄을 죽이는(경기도 광주 쌍령전투) 전과로 이어졌단 말이오.”

“그들도 우리 군사 아닌가. 왜적이나 호적이 아닌 이상 어떻게 마구 죽이겠소. 그건 학살이지. 나는 이 공이 감성이 풍부하고 선비적 품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 여기고, 내가 지니지 못한 것을 가졌다 해서 나 역시 이 공을 존경했소. 최명길이 갖추지 못한 것을 가졌단 말이오.”

“최명길은 명문 가대의 자존심이 강하지요? 하하하.”

최명길 역시 장만 장군의 사위에다가 할아버지와 손자가 모두 정승 반열에 오른 조선조 15가문의 하나로 꼽힌 집안이었다. 게다가 그는 20세 때 한 해에 소과와 대과시험을 모두 통과한 천재성을 발휘한 명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인생의 쓴맛을 모르는 실력자였다. 지성이 출중했지만, 대신 차가운 이지적 면모였다. 그래서 정충신은 그와는 이념과 노선을 같이했지만 이시백과 정서적으로 더 통했다. 같은 친금 노선을 걸어서 이념적 동질성을 갖고 있는 최명길보다 이념이 다를지라도 인생의 쓴맛 단맛을 안 이시백과 더 깊은 우정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상감께 불만이 있소?” 갑자기 이시백이 물었다.

“상감마마께보다 나라의 제도 때문에 불만을 갖고 있소.”

“제도라....”

“그렇지. 조선의 신분제도가 숨이 막힐 지경이잖는가?”

“창랑(최명길의 호)에게도 못할 말을 나에게 하는군요. 내가 만만하오이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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