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90)

6부 4장 귀양

최명길은 정충신보다 나이가 열 살 아래였다. 젊은이답게 미래를 내다보는 진취적인 시선과 날카로운 분석력이 있었으나, 사대부의 특권주의 틀 안에서 사고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에 이시백은 사고의 유연성이 있었다. 정충신과 불과 네다섯 살 차이라는 나이차도 세대차를 극복했다.

이시백은 최명길, 조익(趙翼), 장유(張維)와 함께 4우(友)로 통할 때, 정충신도 포함시키자고 제안했으나 최명길이 “한 스승(이항복) 밑에서 자랐지만 출신을 외면할 수 없다”는 뜻을 비쳐차가운 이지적 한계를 드러냈다. 이시백은 젊어서부터 신산고초를 겪은 탓인지 원숙한 품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이시백이 정충신을 찾았으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조암이 어렸을 때, 개미들이 흰 벌레를 뜯어먹는 것을 보고 벌레가 가여워 울었다는 얘기를 듣고 참 인간적이다, 했소. 할머니 보양을 해드리기 위해 기르던 개를 잡자 살려내라고 생떼를 썼다는 얘기를 듣고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소. 명문 집안 자제로서 좋은 품성을 가졌소이다.”

그에 대한 대꾸 대신 이시백이 다르게 물었다.

“조선 사회가 참으로 답답하시지요?”

그는 정충신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그동안 정충신의 업적을 본다면 진작에 판서나 정승 반열에 오를 만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받쳐줄 사람이 없었다.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는 한계는 승진이나 징벌의 결정적인 순간에 늘 족쇄처럼 그를 묶었다.

“임진왜란 때 많은 의병이 일어나 왜적을 물리쳤으나 정묘호란 때는 의병이 나오지 않았소. 왜 그러는지 아시오?” 정충신이 물었다.

“그야 두렵고 무서워서 그랬겠지요.”

“아니오. 그들은 외적을 무서워할 사람들이 아니오. 임진왜란 때는 의병으로 거병하면 상놈과 천민들을 면천(免賤:천민 신분에서 평민으로 전환)해주었소이다. 그런데 임란이 끝나자 이 제도를 없애버렸소. 천인들이 나설 이유가 없게 된 것이요. 천민이라는 신분을 목숨과 바꾸려고 했지만, 그 제도마저 사라져버리니 왜 나서겠소?”

정충신이 전투에서 매번 큰 전과를 올린 것은 징발된 미천한 군졸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 해먹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런 밥 한그릇에 감동했다.

“맞소. 수공업에 종사하는 관공장(官工匠)과 사공장(私工匠)을 사람 취급 안하니 큰 발명품이 나올 것이 없었을 것이오. 팔천(八賤)인 사노비 관노비 승려 백정 무당 광대 상여꾼 기생에다 상인, 부상(負商), 이런 계급을 차별하니 나라 발전의 동력을 이끌어낼 수 없었지요.”

“그렇소이다. 우리의 노비 제도는 세상 천지에 유례가 없소, 임진왜란이든, 정유재란이든, 정묘호란이든 외적이 우리나라를 침략해 전쟁보상비로 재화와 함께 노예 인력을 강탈해갔소, 정유재란, 정묘호란 때는 수만명이 끌려갔지요. 이렇게 외적은 전쟁을 하여 이민족을 노예로 잡아가는데 우리는 그런 역사가 없지. 적국은 노예를 전쟁 포로 등 피정복지의 이방 민족으로 충당하는데, 조선은 타국을 침공한 일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이방 민족 노예가 없었고, 그럼에도 국내에 노비 자원이 풍부했소. 그 숫자가 전 인구의 6-7할이 된다는 것이오. 애잔한 백성을 적국에 갖다 바쳐도 양반층은 노예 자원이 풍부했던 것이지. 타국에 빼앗긴 인력 손실만도 엄청난데, 여전히 노동 자원을 많이 확보해 가산을 늘렸소. 그들에게는 전쟁참화에도 손실이 없었소. 국가 재정이 고갈되면 백성들을 쥐어짜면 되는 것이었소.?“

“노비가 많은 나라에서 무슨 나라의 발전책을 강구하겠느냐, 그 뜻이지요? 통합력도 떨어질 것이고... 공감하오.”

“무슨 역동성이 있겠소? 낮은 백성들이 깨어나지 못하니 기득권 불사의 전통이 생기지만, 나라는 통합이 될 수 없고 강압과 강제만이 작동하니 동력을 상실해버린 것이오.”

“역시 정 공은 사유가 깊은 사람이오.”

“양반층은 오직 대국에 기생하며 이익을 독점하고, 나라를 팔아먹으면서도 신분은 도리어 강화되었소이다. 상놈은 지배계급, 기득권층을 받쳐주는 그들 삶의 기둥이 되었소. 그리고 평민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해 양반사회를 지탱하는 자원으로 삼았소. 지배층은 세금을 걷는 일이 폭력적인데, 백성들이 세금을 제때 내지 못하면 관아로 불러들여 정강이뼈가 망가지도록 두둘겨 패고, 맞다가 죽으면 그의 친척들이 대신 맞거나 그 돈을 갚아야 한단 말이오. 이런 차별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소? 그래서 세금을 내는 것이 힘들어 스스로 노비가 되는 자도 있고, 처자녀를 노비로 파는 수도 있소. 그렇게 해서 부모 중 한 사람이 노비가 되면 그 자식도 노비가 된단 말이오. 그런데 1할 미만의 양반계급은 세금을 내지 않는 특권을 누렸소. 조암도 그중 한사람 아니오?”

“맞소.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제도가 그런데 어떡하겠소이까?

“백성들의 세금과 노비들의 노동력과 생산력으로 운영되는 나라, 확 바꿔야 하지 않겠소?”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