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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91)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91)
6부 4장 귀양

제도권의 틀 안에서 군림하며 살아온 이시백이 천민 제도 개선의 방법론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 제도의 혜택을 즐기며 안주해 왔으니 남의 아픈 곳을 알 턱이 없었다. 그런데 정충신이 그 맹점을 지적한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겠지만, 외진 바닷가에 홀로 버려진 비감 때문에 그 생각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었다.

나라를 위해 사선을 넘어온 것만도 수십차례인데, 돌아온 것은 배신이니 한미한 출신이기 때문에 오는 형벌인가 해서 분노가 더 치미는 것이다. 이시백은 그의 분노를 다독여줄 마음으로 말했다.

“조금만 진정하시오. 기회가 있을 것이오.”

“나는 귀양살이를 탄식하는 것이 아니오. 평소의 생각을 하는 것이올시다. 자, 한번 생각해봅시다. 어려운 한문을 달달 외는 것으로 상민과 차별화되어서 위세를 부린 양반들은 정작 게으르고 타락했소. 관직을 차지하려는 탐욕에 눈을 부라리고, 벼슬자리 하나에 음모와 이간질로 세상을 분탕질하고 있소. 그건 연연세세 특권과 이익을 얻기 위해서겠지. 헌데 그들에겐 백성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소. 무식해도 무지랭이들 중에는 눈이 있는 자가 있소. 그들 눈에 군림하며 호의호식하는데 배곯는 백성들더러만 나라에 충성하고, 군역에 충실하라고 한다면 설득력이 있겠소? 그리고 세상 사는 이치에 보상 없는 것이 어디 있소? 보상도 없이 충성 강요만 하는 것은 지배층들이 백성을 쥐어짜기 위한 술책일 뿐이오.”

“단단히 화가 나있구려.”

“임진왜란 때를 생각하면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오. 적이 처들어왔지만 군사는 보이지 않고, 지방 관속들은 도망가버렸소. 나라의 녹을 받아먹는 자들이 도망가버리니 백성들이 어쩌겠소? 갈팡질팡, 결국 이리저리 당하니 심한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겠소? 그래서 침략 행군을 하는 적에게 길을 터주고 환영했소(선조실록 25년 5월4일). 왜장의 휘하 군사들이 경상도 해안에 상륙해 부산-밀양-대구-상주-용인-여주-한양을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갈 때, 백성들은 물을 떠다 주며 환영했소. 그러니 왜군의 한양 점령이 불과 보름만에 달성되었소.”

“정녕 그랬던 것이오이까?”

“그렇소이다. 이때 여자들이 겁탈을 많이 당했소. 누구도 구원의 손길을 뻗치지 않으니 여자들은 체념할 뿐이었소. 어떤 여자는 코 한번 푸는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하더이다. 양반층에 당한 것이나 적에게 당한 것이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요. 양반층에게 당한 여인네는 임신하면 그 자식을 노예로 삼으니, 반대로 적에게 당하면 천인으로는 전락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다행으로 여겼다고 하더이다. 중국에 해마다 남자와 여자를 공물로 바칠 때, 양반 집 여자가 끌려가게 되면 여자 노비를 대신 양반집 여자로 둔갑시켜 보냈소. 그걸 내가 주청사(奏請使)로 명국에 갔을 때 빼내온 일도 있소.”

“건주(建州:후금)에 들어가서도 여러 대추(大酋)들과 담판했다고 했지요?”

“그렇소이다. 외교로써 설득하여 트집 잡지 못하게 하였소이다. 사절로 오가며 설득하기를 명과 후금 사이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하니 신뢰한다고 했소. 귀국해서는 후금의 침략에 반드시 대비할 것을 건의했소. 그리고 후금이 조선을 조상의 나라로 숭상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극하지 않으면 선린이 유지된다고 했소. 그런데 명국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후금을 상종 못할 야만족이라고 멸시하고 조롱하니 그것들이 분노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의견을 낸 것이 이렇게 유배생활을 하는 이유가 되어버렸으니, 내 안위는 그렇다 쳐도 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되오이다.”

정충신의 대비책은 현실적이었으나 조정에서는 친금정책이라고 해서 거부했다. 이시백은 생각이 많아진 정충신과 이틀을 함께 보내고 작별을 고했다.

“외롭고 쓸쓸할 때는 속을 깊이 다스리시오. 속을 다 드러내면 마음이 더 황폐해지고 허무해지는 법이오. 정 공이 말한 여러 가지 담론은 옳지만 세상이 이르니 생각해볼 여지가 있소. 다만 선각자적 생각을 하니 대단하오이다.”

이시백이 돌아간 뒤 한양에서 의원 오효민이 유배지를 찾아왔다.

“어떻게 여기를 찾아왔나.” 정충신이 놀라서 물었다.

“우선 진맥부터 하시지요.”

진맥을 받기 위해 자리에 누웠으나 의원이 파견된 것을 보니 틀림없이 이시백과 최명길이 배려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가슴 속 깊이 우정이 새겨졌다. 그가 돌아가자 이번에는 충청병사 구인후가 조보를 가지고 왔다. 조보에는 사헌부 집의(執義:조선시대 정사를 비판하고 관리들을 규찰하며, 풍속을 바로잡던 사헌부 소속 종3품 직제) 박황이 조정의 뜻을 반대했다 하여 파직된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그는 정충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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