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94)

6부 4장 귀양

불쑥 감정이 복받쳐 반발했던 것이다. 요사이 노비들에 대한 연민이 각별해지고 있었다. 처지가 불운할수록 낮은 신분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노예라는 신분적 한계를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아무런 생각없이, 대가도 없이 양반의 부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그것이 도무지 불쌍하고 가련해서 견딜 수 없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정 장수를 위로해주려고 모셨는데, 뚱딴지같이 그런 말씀을....”

“같잖은 소릴 하니 내가 낭패를 보지 않겠소. 종놈들은 생산직만으로도 할 일 다하는 것이오.”

“그것이 낭패란 말이오?”

“나는 단순히 풍류를 즐기기 위해 노비들을 데려다놓고 등골 빠지게 노동을 시킬 수 있는 것이 민망해서 그렇소. 섭섭했으면 그만합시다.”

“붸를 질러놓고 그만두자니요? 왜 이 꽃밭이 부러워서 그런 거요? 부러우면 갖추고 살든가.”

성 생원이 투덜대더니 이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모양이다.

“국기 문란의 죄가 더 무거워져서 해서지방으로 쫓겨간다고 하니 동정의 마음이 생겨서 위로 차 송별연을 벌이고, 기생도 대기시켜 놓았는데 산통을 깨오? 노비들을 대변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있소? 노비들을 충동질하는 것도 이적죄요. 더 당하고 싶소?”

정충신은 자신의 심저(心底)에 깔린 것을 이 자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에 성 생원이 더 권위에 상처를 받았다는 듯 큰소리쳤다.

“그대로 두지 않겠소. 우리 집의 사병(私兵)을 풀어서 한양으로 압송하겠소.”

“아서요. 왜들 이러시오.”

당진군수 이영인이 끼어들었다. 그러나 기왕에 화가 난 성 생원이 지지 않고 소리 질렀다.

“그대가 국사범으로 걸려든 이유를 알겠도다. 꽉 막힌 자를 누가 거들어주겠나? 한없이 가여운 인생, 이것이 그대의 한계야!”

정충신은 대꾸하고 싶지 않아서 그길로 숙소로 돌아왔다. 모란과 장미와 군자란이 어떻고, 구름이 어떻고, 무지개가 어떻고 하는 따위 간지러운 감정이입 놀이에 가담하지 않은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겼다.

다만 꽃밭에서 세상의 불평등 구조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 이런 구조는 어디에서 오는가. 제도 탓인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관례 탓인가, 아니면 폭력 탓인가.... 나라가 평화롭다면 다양한 삶도 용인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나라는 험한 눈보라에 갇힌 산짐승 꼴이다. 수십년래 전쟁 상황이다. 산하는 헐벗고, 민심은 피폐하다.

이런 때는 계층과 신분 차이를 뛰어넘어 모두가 하나로 뭉쳐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더 가혹한 차별 가운데서 아랫것들만 무한 희생을 강요받는다. 지배층은 아무런 손실없이 더 군림하며 배부르게 살고 있다. 세상은 인본이 기본이며, 출신 성분에 차이없이 서로 배려하고 평가한다는 것, 그것이 상호 따뜻하게 관류할 때 나라의 힘이 하나로 결집돼 어떤 위기도 돌파해나가지 않을까.... 정충신의 생각이었지만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귀양지 이사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데 충청병사 구인후가 찾아왔다.

“장군 나리, 나도 근무지가 바뀌게 되었소이다. 통제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진실로 영전을 축하하오.”

한 사람은 영전하고, 한 사람은 더 험한 곳으로 유배를 떠난다. 박탈감과 소외감이 가슴을 쓸쓸하게 훑고 지나갔으나 정충신은 눈을 지긋이 감으며 마음의 동요를 참았다.

해질녘에 도사(都事:군읍의 상급 관리)와 구인후가 귀양처 오두막에 이별의 술자리를 마련했다. 정충신은 모처럼 대취해 끝내 단칸방에 쓰러졌다. 그의 뺨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4월11일 금부도사 윤익원이 한양에서 내려와서 왕명을 전했다.

“중죄인 정충신은 황해도 장연으로 귀양처를 당장 옮기라!”

정식으로 유배지가 정해진 것이다. 당진을 떠난 지 닷새만인 4월 17일 정충신은 한강 중하류 노량진에 당도했다. 배를 건너면 바로 도성이다. 도성에 들어가면 중신들과 옛 전우와 벗들을 만날 수 있다. 모래톱에서 궁궐을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강을 건너고, 날이 저물어서 어느 민가에 들어갔다.

“정충신 장군이 여기 묵고 있소?” 밖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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