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재정 논쟁에 대하여
최형천( ㈜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코로나19 이후 세계 각국이 일관되게 추진하는 경제정책의 하나가 재정을 풀어 국민들에게 긴급자금을 지원하는 전략입니다. 우리나라도 추경을 편성하여 국민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중인데, 이는 GDP 대비 1%미만의 수준으로 OECD국가 중 아주 소극적인 편에 속합니다. 우리나라의 GDP대비 국가부채비율은 40%대로 200%를 넘은 일본에 비하면 대단히 양호한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을 투입하여 수입의 감소로 고통을 겪는 가계와 멈춰버린 경제에 활기를 불어 넣으려는 정책을 과도한 재정지출인 것처럼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상당합니다.

이렇게 재정 집행을 반대하는 논지는 한 때 우리나라가 국가부도의 위기에 처한 경험 때문에 방만한 재정 사용으로 혹시나 나라가 다시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그러면서 복지나 각종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퍼주기로 비난하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저축을 미화하는 고전적인 경제이론에 근거하여 절제와 긴축을 강조하는 기조입니다.

그렇다면 최근 우리가 겪었던 경제위기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IMF국가부도위기는 대기업과 일부금융회사가 해외에서 단기자금을 차입하여 국내에 들여와 차익을 노린 돈놀이를 하다가 국제 핫머니업자들에게 당한 부도덕한 금융사고 였습니다.

문제는 이들에게 국가가 채무상환보증을 해주었기 때문에 국가가 부도위기까지 몰렸고, 그 돈을 고스란히 국민세금으로 물어주어야 했으며, 그 뒤 금융시장은 완전 개방되고 경제정책은 물론 노동, 복지 정책까지도 IMF의 통제를 받아야 했습니다.

또한 2008년 발생한 미국 발 금융위기는 사악한 금융회사들이 금융시스템을 악용하여 무제한의 사익을 추구하다가 전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를 마비시킨 사건으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자본주의와 금융이 얼마나 무서운 흉기로 돌변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로 인해 각국은 이런 불량한 금융기관에 볼모로 잡혀 꼼짝없이 구제 금융을 풀어 이들을 살려내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최근의 국가경제 위기의 실상은 정부의 헤픈 씀씀이나 개인의 도덕적 해이와는 관련성이 없었으며, 자본주의의 최상위층을 점거하고 있는 자본과 금융이 저지른 흉악한 범죄행위에 기인한 것으로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퍼주기 식 복지정책 때문에 국가재정이 부실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서민들은 직장을 잃거나 살고 있는 집을 빼앗기고 거리로 쫓겨났으며 고통의 덤터기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지만 금융기업들은 국가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아 돈 잔치를 벌려 세계 곳곳에서 강력한 저항을 받았습니다.

아담 스미스 이후 전통 경제이론가들에게 있어서 저축이나 절약은 선이었고 지출은 악이었습니다. 전쟁과 사치를 위해 방만하게 국가재정을 낭비하고 세금을 올리는 제왕들을 견제하기 위한 논리였습니다. 정치권에서도 “빚을 잔뜩 진 채 건전한 경제생활을 꾸려가는 집안은 없다”(마거릿 대처)는 논리로 국가경제를 가정경제에 비유하여 설명하면서 긴축정책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국가의 재정은 국민경제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며 따라서 재정의 적자 여부로만 한 나라의 경제 상태를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소규모 가정경제의 논리로 거시적이고 복합적인 국가경제를 설명하는 것은 냉장고 안에다 코끼리를 집어넣으려는 것과 같이 적절치 않는 시도입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정부가 추진하는 긴급지원을 위한 재정 투입은 과거의 위기 시 재정 지출과는 다릅니다. 국가가 ‘최종 고용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하여 재정을 사용하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공공정책이라 보여 집니다. 정부의 지출은 세수의 규모를 감안하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근거 없는 기준이나 숫자를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추려는 것은 고지식함을 넘어 교조적입니다. 지금은 위기상황이며 그 시기를 놓치면 회복이 어렵고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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