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교육이 필요하다
김용표(전 백제고 교장)

중국 발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이 때 중국문자인 한자를 교육해야 한다고 말하면 갑분싸가 될 것 같다. 하지만, 한자는 중국에서 만들어졌어도 오랜 기간 동아시아가 공유한 문화이다. 수천 년을 공유한 문자에 새삼 국적을 따질 필요가 있을까.

한자교육의 필요성만 이야기하면 마치 한글이 말살되는 것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말 속에는 한자로 만들어진 단어가 약 70%라고 추정한다. 이미 한자는 2000년 이상 우리의 삶과 정신 속에 살아있는 우리말의 한 축이다. 실제 한·중·일의 한자는 모양도 발음도 뜻도 상당 부분 다르다. 그러나 한글전용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한자교육을 배제함으로써 우리말의 확장성이 줄고 있다. 한글 전용의 ‘전용’도 한자고 한글사랑본부의 ‘본부’도 한자 아닌가. 세 가지 측면에서 한자교육은 필요하다.

첫째, 새로운 말을 만드는 데 한자를 활용하는 것이 효율성이 높을뿐더러 오히려 자연스럽다. 한글은 사물과 현상에 대한 형용능력이 뛰어나고 전 세계 어떤 글자보다 소리를 문자화하는데 탁월한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 문화, 사상을 순 한글로 이름 짓는 데 분명히 한계도 있다. 인터넷에 신조어를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순 우리말로 만들어진 단어가 몇 개나 되는지. 대부분 영어를 우리말 발음과 비슷하게 추려서 만들었거나, 맥락을 알 수 없이 억지로 앞글자로 축약하거나...이것을 한글 사랑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은어를 만드는 방식이지 언어가 아름답게 확장되고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모습이 아니다. 말이 너무 앞서 나가지만 세계는 지금 중대한 전환 시기에 있다. 이때 세계의 문화와 과학의 리더가 되고 표준이 될려면 새로운 지식과 문화를 어느 언어로 명명하는가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려면 추상적 개념을 쉽게 정의할 수 있는 조어능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 식 한자의 활용이 필요한 이유이다.

두 번째, 우리 국민의 독해능력 향상을 위해서 한자교육은 필요하다. 한국의 문맹율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실질문맹율은 높다고들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말 속에 녹아있는 한자의 영향 때문이다. 몇백 단어의 생활 속 한자만 학습해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말들이 긴 설명이 보태져야 겨우 이해가 된다면 그것은 결국 독해의 효율성이 낮은 것이다.

세 번째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서도 한자교육은 필요하다. 한자로 쓰인 조선왕조실록 500권, 아직 번역조차 다하지 못한 3000권의 승정원일기 등 수많은 우리 역사의 기록물들을 생각해 보자. 옛 선비들은 죽으면서 최소한 한두 권의 문집을 남겼다. 한국인은 역사를 남긴 민족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록물을 전혀 해독할 수도 없을뿐더러 심지어 제목조차 읽을 수 없다. 역사의 가독성이 너무 떨어진다. 과거를 외면하는 자 정체성을 논할 수 없다. 정체성은 역사의 혈맥 위에 반성과 변화를 갈망하며 세우는 자신의 철학이다.

초중등의 교과서에 생활한자라도 병용 표기하여 한자교육을 시킨다면 청소년들의 독해능력향상은 물론이고, 한국의 선진적 문화와 과학에 사용될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것이 훨씬 간편해지고 자연스러워 질 것이다. 한자와의 공존이 한글을 확장시킨다. “공존이 아니면 부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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