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구둣솔

이성자(동화작가)

며칠 전 동아리 합평 시간에 집안의 보물을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일화를 들려주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보물이란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매우 드물고 귀하여 가치가 있어 보배로운 물건’이라 적혀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값이 많이 나가는 물건, 혹은 조상이 남긴 귀한 것들을 보물로 소개했다. 부러울 정도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물건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머님의 구둣솔을 우리 집의 보물이라고 소개했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작가님, 동화 쓰지 말고 진짜 보물 말이요, 보물!” 김 작가가 웃으며 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당하게 우리 집 보물은 일편단심 구둣솔이라고 우겼다.

스물여섯에 시집 와 정신없이 바동거리며 살 던 중 뜻밖에도 작은 구둣솔을 애지중지하는 어머님을 보게 되었다. 아끼는 정도가 아니라 몸이 아플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면 구둣솔을 안고 얼굴에 부비기도 하고 심지어 안고 자기도 했다. 혹시 어머님이 그 무서운 치매초기가 아닐까 두려운 생각까지 들었다. 어느 날 몰래 구둣솔을 장롱 깊숙한 곳에 감춰놓았다. 그런데 구둣솔을 찾는 어머님의 모습이 너무도 간절하고 애틋해서 같이 찾는 시늉을 하다가 슬그머니 꺼내놓았다. 다시 찾은 구둣솔을 안고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차마 사연을 묻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데 “이 구둣솔은 네 시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고, 평생 나를 지켜준 소중한 보물이다” 라며 담담하게 지난 사연을 들려주셨다. 어머님은 경찰이었던 아버님의 신발을 아침마다 구둣솔로 정성껏 닦아드리곤 했단다. 6·25가 발발하고 아버님을 찾아내려는 공산당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옷가지, 사진 등을 모두 불에 태워버렸던 시절이었다. 홀로 아들 셋을 키우면서 아버님의 소식이 궁금할 때마다 오직 구둣솔 하나에 마음을 의지하며 이를 악물고 버텨온 날들이었다.

그러던 1950년 11월 15일, 유난히도 보름달이 둥실하던 밤이었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 숨어 지내던 아버님이 급한 일로 잠깐 집에 들렀는데, 이웃마을에 있던 공산당들에게 납치되어 그 후로 영영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님은 스물아홉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나라에 바친 유가족이 되고 말았다. 눈만 뜨면 아버지가 왜 안 오냐고 칭얼대는 자식들에게 전생이 끝나면 꼭 돌아온다고 위로하며 살았던 그 시절이 손바닥만 한 구둣솔 하나에 절절이 담겨 있는 세월이었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가족을 나라에 바친 이 나라의 수많은 유가족들, 아버지의 부재 때문에 외롭고 가난하게 살아온 자식들, 또 자식을 나라에 바치고 삶이 아닌 삶을 살아온 부모님들. 나라에서는 모든 유가족들이 그동안 겪으며 지내왔던 세월을 얼마의 연금으로 보상하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돈만이 유가족들의 아픔을 해결할 수 있을까? 작은 구둣솔 하나에 평생을 기대며 살아왔던 굽이굽이 한 많은 여인의 삶은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 아버지의 부재로 늘 가슴 한쪽이 비어있었던 자식들의 허허로운 삶은 어떤 손이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매년 현충일이면 우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향해 묵념을 울리면서 ‘호국영령들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각오를 다진다. 그런데 그 기억이 유가족 당사자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이 죽었는데 기억이라는 말로 보상할 수 있을까? 어떤 희생보다도 값진 희생을 위해, 나라에서는 유가족들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정책적으로 더욱 활성화해야 할 일이다. 한 인간의 당당함이란 어렸을 때부터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부모님이 뒤에서 버티고 있을 때 자연히 돋아나는 새싹 같은 것이리라. 그 새싹이 자라서 푸르른 잎이 되듯이 나라가 유가족의 자녀들에게 든든한 부모가 되어주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부모들에게는 든든한 자식이 되어주어야 하리라.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