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07)

6부 5장 귀향

“가솔들을 이끌고 귀양살이를 했다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지 않았겠습니까?”

이성신 사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야 기준이 없기 때문이지. 공평의 잣대가 꼴리는대로 작동하기 때문이지. 집권층이나 관아 놈들이 제대로 구사하지 않는단 말이오. 재물을 갖다 바치면 있는 죄도 탕감해주고, 이익에 도움이 안되면 없는 죄도 만들어서 덮어씌우지. 그래서 사당골 천민골에는 불공평한 세상에 버림받은 자들이 들끓고 있소. 몸을 파는 여인네들이 많소. 조선의 병폐는 여인네들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천대하니 국력의 반을 소모해버리고 있소.”

독특한 생각이었다. 이성신 사간이나 정충신은 여태까지 여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못된 기생정치가 나라를 망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오? 그 나라 타락의 척도를 보면 여인네들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기준점이 되오이다. 내 딸은 귀엽고 소중하지만, 남의 딸은 노예거나 성놀이개라는 이중적 사고가 나라를 온전하게 할 수 없지.”

“독특한 시선이군요.”

“사당골에 온통 창병이 돌고 있소. 여인네들을 화류병(성병)을 옮긴다고 잡아다가 족치거나 때려죽이고 있소. 그 병을 옮긴 자가 누군데?”

사당골은 과천골 북편에 있었다. 박금계의 누옥과 그리 멀지 않은 퇴폐 동리였다.

“따지고 보면 궁중 사정은 더하지. 상감이 비빈, 후궁, 궁녀를 수십 명, 또는 수백 명 거느리는데 그들에게 화류병을 옮기지 않겠소?”

“큰일 날 소리를 하시는 거요?”

이성신이 박금계를 노려보았다. 감히 상감을 비방하는 발언을 하다니, 과연 온 정신인가. 그래도 박금계가 하던 말을 계속했다.

“왕은 창병이 들었어도 여전히 이 여자 저 여자 불러들이거나 찾아가서 방사를 즐기오이다. 창병으로 피부가 썩고 옥경(玉莖)에서 고름이 질질 흘러나와도 하던 짓을 계속한단 말이오. 어떤 때는 병을 낫게 한다 하여 깨끗한 소녀를 데려다 소녀의 질 속에 방사를 한다고 하오. 황음을 즐기면서 병을 낫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 소녀의 질은 하수구보다 못하지 않겠소? 소녀가 후궁이 된들 영광이겠소? 이름없이 죽어간 소녀가 얼마나 되는 줄 아시오?”

완전히 돌아버린 것 같았다. 그런 은밀한 이야기는 궁중 내에서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인척 중에 어의가 있었소. 왕의 진맥을 잘못했다 하여 처형되었소. 사실은 구중심처의 비밀을 토설한 것이 빌미가 되어 쥐도새도 모르게 가버렸던 것이오.”

인근에 물좋은 사당골이 있기로소니 이렇게 배꼽 아래 얘기를 내놓고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지엄하신 왕의 옥경까지 거들먹거리다니, 과연 살려고 하는 짓인가?

“나는 금계가 근신하며 지내는가 염탐하러 온 사람이오. 일부러 고변하라고 그런 말 하는 것아니오?”

이성신은 한창 연상인 그를 내놓고 범죄인 다루듯이 다그쳤다.

“이보게, 나는 이미 오래 살았소. 구차하게 목숨 부지할 생각이 없소.”

그러니 하던 말을 계속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사당골에 기생 단속령이 발령됐소. 그것은 절대로 잘못된 정책이오.”

“기생 단속령이 잘못된 정책이라면 어떤 것이 잘된 정책입니까.”

“정력을 휘두르는 남정네들을 단속해야지 왜 여자들을 단속한다는 것이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조선 사회는 기생과 창기의 구분이 없는 풍기문란한 사회로 변질되었다. 예법의 나라라고 했지만 한꺼풀 벗기면 위선의 나라다. 이런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관기나 사가의 기생이나 모두 매음부로 살아가고 있소. 먹고 살 길이 없으니 그리 됐지만, 돈있는 남자들이 그렇게 만들어버렸소. 관기나 창기가 정기적인 검진을 하거나 용의검사를 하는 것도 아니니 이 병은 널리 창궐하고 있소. 기생 누구나가 매음을 하거나 화류병에 걸린 것은 아니나, 모두 잠재적인 보균자들이오. 그리고 드러내놓고 하는 짓이 아니기 때문에 은밀하게 퍼지기 쉽소. 사당골이 남자나 여자나 미친 사람이 많은 것은 이런 창병 때문이오.”

조선시대 성매매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기생 제도가 있는 이상 성매매는 이루어졌고, 은근자, 탑앙모리, 색주가 등이 매춘과 연관이 되었다. 기생들은 기예가 있었던 반면에 은근자 탑앙모리는 기예 없이 남자를 상대로 술과 몸을 팔았고 갈보라는 말을 들었다.

타락한 사회는 망국을 자초한다는 것이 박금계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라는 이미 임진왜란, 정묘호란을 거치면서 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세상마저 타락했으니 나라의 재구성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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