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09)

6부 5장 귀향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어떤 중늙은이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주인장 어르신 아닙니까요?”

그가 정충신 앞에서 숨찬 목소리로 말하며, 허리를 구십도 각도로 꺾어 인사했다.

“주인장이라니? 댁은 뉘시오?”

“소인이 장군 나리의 사패지를 지키고 있는 허순보라고 하옵니다. 지곡의 사패지는 임금님이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신하에게 내린 토지라고 해서 서산 관아에서 소인더러 땅을 붙여먹으면서 관리하라고 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옥을 들르지 않고 가시길래 그럴 수 없다 하여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누추하지만 집으로 가시지요.”

관리인 허생원의 집은 마른 풀잎으로 지붕을 덮은 초라한 오두막집이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문과 한평 반 정도 되는 단칸방과 혹처럼 달려있는 부엌, 단 두 칸의 헛간같은 집이었다. 아궁이에선 안집 마누라가 손님 대접한답시고 닭을 삶는 모양인데, 연기가 방안에 가득 들어차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정충신은 해소병에 기침이 잦은 편인데, 연기까지 마시니 더욱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관리인이 주인장에게 한사코 대접하는 것을 사양할 수가 없어서 삶은 닭과 토주 대접을 받고 한동안 쓰러져 잤다. 그 사이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몸살이 있던 차에 기관지가 상해서 그는 갱신하지 못했다. 잠을 자는 동안 객혈까지 했던 모양이다. 놀란 허순보가 그를 일으켜 앉혀서 계속 등을 토닥거렸다.

“고생이 많소. 이제 떠나야겠지?”

가슴을 진정한 정충신이 말하자 관리인 허순보가 깜짝 놀랐다.

“아닙니다, 나리. 이러다 큰일을 당하십니다요. 병이 낫고 떠나셔야 합니다. 소인의 누옥에서는 모실 수 없으니 인근의 절로 모시겠습니다. 망일사라는 절인데, 주지스님이 마침 의술까지 갖추고 있으니 천만다행입니다.”

생각해보니 고향 전라도 광주까지는 아직도 보름 이상 걸어야 한다. 몸이 좋지 못하니 길은 더 지체될 것이다. 그는 조랑말 등에 업혀서 지곡으로부터 이십오리 떨어진 망일산의 망일사로 거처를 옮겼다. 망일사는 망일산의 서쪽 산중턱에 서북향으로 앉혀져 있었다. 주변에 수백년 묵은 고목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서 고찰임을 말해주었다.

“연락을 받고 거처하실 방을 마련했습니다.”

주지 인정 스님이 나와서 정충신을 정중히 맞았다. 그는 주지가 거처하는 방 건너편 방에 들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황토흙 냄새가 진하게 풍겨나왔다.

“황토방에서 며칠 지내시면 몸이 보해질 것입니다. 몸의 독기가 쏙 뽑혀져 나갈 것입니다. 수십 년 군무 중의 과로와 귀양살이의 고단함, 그리고 천리길 고향을 가신 피로가 겹쳤으니 얼마나 몸이 쇠약해지셨겠습니까. 그동안 쌓인 독소를 뽑아내야 합니다. 갱신하면 더욱 큰 일을 하시게 될 몸이시니 새롭게 힘을 비축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한두 달 느긋이 지내셔야 합니다.”

“내가 지금 호사를 누릴 처지가 아니오.”

“호사가 아니라 재축적입니다. 소승은 일찍이 정 장수 나리의 위업을 알고 있습니다. 소승의 제자들이 의승병으로 나주의 김천일 장군, 고경명 장군 휘하에 들어가 왜군을 격파했습니다. 정묘호란 때는 서북지방으로 갔지요. 이때 정충신 장군께서 나라를 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헌데 장군께서도 김덕령 장군처럼 억울하게 당할 뻔했지요.”

“아니, 김덕령 장군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 있었습니까?”

정충신이 놀라서 물었다. 벌써 수십년 전의 일이고, 그것을 입에 올리는 것은 반역죄에 해당되어 누구에게나 금기시되었다.

“알다마답니까. 이몽학의 난에 가담한 도천사의 승려 능운이 바로 나의 사우(寺友)입니다.”

김덕령은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모함에 의한 것으로, 그는 이몽학의 난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누명 하나로 처형되고 만 것이다.

“한마디로 개새끼들이지요. 금수만도 못한 놈들이 세상을 관리하니 이런 변이 생기는 것입니다.”

승려의 입에서 이렇게 육두문자가 나오리라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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