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10)

6부 5장 귀향

“이 소승의 얘기를 들어보십시오.”

인정 스님이 정좌한 채 이번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흉년까지 겹쳐 백성들의 생활은 비참했다. 조정에서는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강화를 둘러싸고 찬반 국론이 치열했다. 그런 사이 일본의 재침(정유재란)이 시작되었다. 젊은이들이 다시 군대에 차출되고, 백성들은 산성(山城)을 수축하는 데 동원되었다. 흉년인데도 마른 수건을 짜듯이 각 집집마다에서 군량미를 훑어갔다.

공주에 사는 서얼 출신 이몽학은 모속관(募粟官:군량 수집책)이 되어 충청, 전라도를 돌았다. 이때 굶주리는 백성들의 참상을 보았는데, 이런 와중에도 군량을 빼앗는 모속관이 한수 더 떠 백성들을 등쳐먹고 있었다. “벼룩의 간을 빼먹지...” 그 자와 다투다 그를 돌멩이로 쳐죽이고 물속에 쳐박았다. 살인이 들통이 나면서 그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이몽학을 동정한 상관 한현이 차령(산맥) 골짜기에 그를 숨겨주었다. 이몽학은 이때 홍산(鴻山:지금의 부여) 무량사로 흘러들어가 동갑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해 친목회를 가장한 반도 규합에 나섰다. 민심이 이반되고 방비가 소홀하자 어사 이시발 휘하에 있던 선봉장 권인룡, 김시약 등이 동갑회에 합류했다. 뜻있는 거사를 하니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한현도 크게 활약했으나 갑자기 부친상을 당해 홍주(洪州:지금의 홍성)로 내려가자 이몽학이 군권을 쥐었다. 내포(內浦)에서 군사력을 강화하는데, 도천사(부여군 은산면에 있는 사찰. 임진왜란 때 소실) 승려 능운, 사노(寺奴) 팽종과 김경창 이구 장후재 등 지지자들이 합류했다. 계롱산 골짜기의 갑사, 동학사, 마곡사의 승군과 속군이 합류해 600-700명의 군사를 헤아렸다.

1596년 7월 2일 이몽학 반군이 야음을 틈타 홍산현을 습격해 현감 윤영현을 붙잡았다. 뒤이어 임천군(林川郡:부여군 남부 지역에 있었던 행정 구역으로 후에 부여군에 통폐합)을 습격해 군수 박진국을 납치했다. 이들은 이몽학의 거사에 감화되어 모두 반군에게 협력했다.

7일에는 정산현(定山縣:청양군 정산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을, 8일에는 청양현(靑陽縣)을 함락하자 정산현감 정대경과 청양현감 윤승서가 도주했다. 9일에는 대흥군(大興郡:예산군 일부 지역)을 함락하니 군수 이질수도 산중으로 도주했다. 지방 수령들이 항복하거나 도주하는 사이, 백성들이 계속 합류하니 그 무리가 수 천에 달했다. 부여현감 허수겸은 하인들이 무기를 적진으로 운반하는 것을 보고 세상이 달라졌다고 판단하고 반군이 경내에 들어오자 반군에 투항했다. 서산군수 이충길은 아우 3명을 반군에게 보내 몰래 통하게 하여 도왔다. 이몽학은 대흥을 함락한 같은 날 홍주를 침범했다. 홍주만 함락시키면 충청도 맹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체찰사 종사관 신경행을 보내 반군의 포위망을 뚫었다. 수사(水使) 최호도 군사를 이끌고 홍주성에 입성했다. 이들이 반군과 일합을 겨룬 사이 충청병사 이시언이 군사를 이끌고 무량사에 이르러 주둔중인 반군을 치고, 어사 이시발은 유구에, 중군장 이간은 청양에 포진했다. 이들 숫자가 일만이었고, 화력이 막강한 화포로 반군을 밀어붙였다. 반군은 의기가 있을 뿐, 무기라고는 도끼와 쇠스랑, 죽창 정도였다. 차령과 공주강에서 피를 부르는 혈전을 벌이니 골짜기는 피의 강이 흘렀다. 관군 연합의 공격이 가열되자 이몽학이 11일 새벽 반군 무리를 이끌고 덕산으로 달아났다. 이때 세 불리를 느낀 반군 무리 중 상당 수가 도망쳤다. 관군 본부는 심리전으로 이몽학의 목을 베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고 각 고을에 방을 써붙였다.

쫓기던 수일 후, 산골짜기에서 지쳐서 쓰러져 자고 있는 이몽학을 김경창 일행이 이몽학의 목을 베었다. 한현도 홍주에서 붙잡혀 한양으로 압송되어 광화문 네거리에서 능지처참을 당했다. 이때 처형된 사람이 수십 명이며, 외방에서 처형된 사람도 백 수 명에 이르렀다. 치열한 전쟁이었던 만큼 보복도 처참했다. 이몽학을 벤 김경창도 배신자로 몰려 처형되었다.

반란 주모자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의병장들의 무인사건(誣引事件:거짓으로 혐의를 뒤집어 씌운 사건)이 터져나왔다.

“네, 이놈, 바로 말하렸다. 이건 일개 서얼 출신의 이몽학 따위가 하는 짓이 아니다. 필시 뒤에 나라를 뒤흔들만한 두령이 지휘하고 있겄다?”

“나리, 소인은 암 것도 모릅니다유.”

“모르고 난에 가담했단 말은 가당치 않다. 디지기 전에 제대로 불라. 그러면 살려준다.”

사헌부와 의금부에서 차출된 고문관은 체포된 자를 불에 달군 인두로 등과 목을 지지고, 쇠꼬챙이로 허벅지와 샅을 찌르고 눈깔을 후벼 팠다. 이런 고문을 이겨낼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아아, 살려만 주셔유. 다 말할팅개유”

“그래, 좋다. 지금 남쪽에서 북상중인 익호(翼虎)장군이란 놈이 있다. 김덕령이란 자 말이다. 나는 호랑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그놈이 배후 아니냐. 그를 흠모하였지?”

“야야. 맞어유, 맞어유. 그러니 살려만 주셔유.” 그는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그러면 토설했겄다? 그럼 당장 익호장군이란 자를 잡아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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