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발치는 총탄 속 사명감 하나로…
<김현조 6·25참전유공자회 남구지회 사무국장>
전쟁 발발하자 나이 속이고 입대 월비산 351 고지전투 등서 활약
함께한 전우중 현재 생존자 2명 “참전유공자 복지혜택 확대돼야”

김현조 6·25참전유공자회 남구지회 사무국장. /정다움 기자 jdu@namdonews.com

“사방에서 총알이 빗발치고 포탄 굉음이 일대에 울려펴졌지만 우리 나라를 수호해야겠단 사명감 하나로 돌진했지. 죽음의 기로에 선 38명의 전우들은 그야말로 호국영웅이었어.68년이 지나도 피 흘리며 쓰러져간 전우들의 이름을 잊지 못해…”

6·25참전용사이자 15사단 50연대 창설부대원인 김현조(90) 6·25참전유공자회 남구지회 사무국장은 강원도 고성군 월비산 351고지 사수 전투에 참여해 대한민국을 지켜낸 장본인이다. 여기에 인민군이 점령했던 돌산고지를 탈환하고자 인민군 소탕작전을 펼친 ‘다람쥐 부대원’이다.

전남 해남군에서 태어난 김 국장은 1952년 1월 16일 만 21살의 나이로 제주도 신병훈련소에 자진 입소했다. 어린 나이로 입대가 거절될까 염려해 이름과 생년월일을 변경해 기재할 정도로 김 국장의 나라를 지켜내겠단 호국 정신은 대단했다. 6개월간의 기초군사 훈련 후 김 국장은 고성군에 있는 15사단 50연대 1대대 2중대 3소대 2분대장이으로 배치됐다.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351고지를 사수하면서 동시에 돌산고지를 탈환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김씨는 인민군 소탕작전을 위해 30여명의 전우들과 돌산고지를 향해 돌진했던 순간을 잊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포탄으로 왼쪽 정강이에 수류탄 파편이 박혔고, 소대원들도 쏟아지는 총알로 맥없이 쓰러져갔지만 국군의 기개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 듣는 포탄 굉음이 수시간 이어졌고, 전쟁터는 혼비백산 그 자체였지만 애국정신으로 뭉친 전우들은 인민군에 총을 겨눈 채 한걸음씩 나아갔다.

피를 흘리는 치열한 전투는 40여일간 지속됐고,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휴전이 선언된 그날까지도 돌산고지 일대에는 총성이 이어졌다. 그는 월비산 351고지는 7번이나 주인이 뒤바뀔 만큼 남한과 북한의 전투는 치열했다고 전했다.

김 사무국장은 “351고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에 따라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들 중 현재 살아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한 단 2명뿐이다”면서 “주먹밥 한개로 하루 한끼를 떼우며 혹독한 추위를 견뎌냈던 그날이 있기에 현재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난해 1월 6·25참전유공자회 남구지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들의 처우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참전용사들이 피를 흘리며 지켜낸 만큼 예우 또한 이뤄져야 하지만 아직 복지나 정책은 미흡한 상황이다”며 “국가유공자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은데 버스 등 대중교통이라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다움 기자 jdu@namdonews.com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