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이계홍 역사소설 깃발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14)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14)
6부 5장 귀향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인정 스님이 행자를 불러 대동하고 절 마당으로 나서며 설명했다.


“우리 망일사는 수덕사의 말사로서 창건 연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만, 고려 현종 8년(1017년)에 지성선사가 수도하기 위하여 인법당(人法堂)을 조성해서 건립한 절입니다. 인법당은 부처님을 모신 법당에서 사람이 함께 거주하는 형태를 말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사람 냄새가 풍기는 따뜻한 절로 보입니다.”

“발복(發福)하는 사찰로 유명합니다. 운이 틔어 큰 복이 내린다는 사찰입니다. 난리통에 퇴락해서 중수했지만, 여기 사시면서 직접 경험해보시지요.”

망일사는 순조 원년(1801년)에 큰 화재를 당하여 재중수했고, 철종 8년(1857년)에 확장되어 같은 서산의 개심사와 함께 규모가 갖추어진 사세(寺勢)를 견지했다. 사역(寺域) 안에 대웅전, 산신각, 5층석탑, 석등 2기, 범종각, 일주문이 들어서있고, 전체적으로 아담한 풍치미를 자랑하고 있다.

“저기 정 장수 나리의 사패지가 보이는군요.”

인정 스님이 이마에 손을 짚으며 질펀히 뻗어있는 산을 내려다보았다. 사패지의 숲은 완만한 구릉을 형성하며 잠자듯 누워있었다. 멀리 웅도와 고파도 너머 큰 바다가 보이고, 삼각산과 오관산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머무르셔야지요?”

“고향으로 돌아가야지요.”

“나라에서 내린 녹훈지에서 노후를 사시는 것도 나라에 대한 충성이 될 것입니다. 살아생전은 물론 사후도 후대가 길복할 명당이 있습니다.”

“길복할 명당이 있답니까?”

“그렇습니다.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지곡면 대요리 사패지로 향했다. 관리인의 오두막이 있는 곳으로부터 반마장 쯤 오르는 곳에서 인정 스님이 멈추어 서더니 한 곳에 눈을 주었다.

“여기가 천하의 명당이올시다. 장수가 누울 자리로는 최상의 자리입니다.”

묘지는 남동쪽으로부터 순한 용 한 마리가 몸을 꿈틀거리며 서해 바다로 향해 달리다가 멈추고, 머리를 번쩍 든 부분이 마할산으로 오르고, 마할산 서편 중턱에 혈이 있어 묘터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묘터 왼쪽에서 흘러오는 물은 마할산 앞을 감아돌아 서북방향으로 소리없이 흐르고 있었다. 강 건너 안산은 올망졸망한 산들과 그 뒤에 아우를 지키는 형처럼 솟은 부성산과 팔봉산이 마할산을 품고 있는 듯했다.

“여기다 유택을 잡으십시오.”

정충신이 가타부타 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자 인정 스님이 다시 말했다.

“소승의 말이 틀릴 수 있으니 다른 지관을 한번 불러서 상의해보십시오.”

친절이 몸에 밴 인정 스님은 정충신을 깍듯이 예우했다. 돌아오는 길에 정충신은 명당터보다 절에서 인정 스님이 갈파하던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스님, 고려조 태조 임금의 훈요십조 중 8조 기록울 갖고 있습니까?”

“소승이 다 외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불경 암송하듯 읊었다.

-其八曰,車峴以南,公州江外,山形地勢,?趨背逆,人心亦然,彼下州郡人,參與朝廷,與王侯國戚婚姻,得秉國政,則或變亂國家,或銜統合之怨,犯?生亂,且其曾屬官寺奴婢,津驛雜尺,或投勢移免,或附王侯宮院,姦巧言語,弄權亂政,以致?變者,必有之矣,雖其良民,不宜使在位用事(8조 왈, 차현(車峴) 이남 공주강 밖은 산형과 지세가 모두 배역하니 인심 역시 그러하다. 그 아래의 주,군 사람이 조정에 참여하여 왕후,국척(國戚)과 혼인하여 나라의 정권을 잡게 되면, 국가를 변란케 하거나 통합당한 원망을 품고 임금의 거둥하는 길을 범하여 난리를 일으킬 것이며, 또 일찍이 관청의 노비와 진(津) 역(驛)의 잡척(雜尺)에 속했던 무리들이 권세있는 사람에게 의탁하여 신역을 면하거나 왕후나 궁원(宮院)에 붙어 말을 간사하고 교묘하게 하여 권세를 부리고 정치를 어지럽혀서 재변(災變)을 일으키는 자가 필히 있을 것이니, 비록 그 선량한 백성일지라도 벼슬 자리에 두어 권세를 부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

“듣고 보니 고려 건국을 도운 전라도인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전라도를 지칭한 것이 아닙니다. 후백제의 잔당, 혹은 옛 태봉세력이었던 금강 유역의 자를 경계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혹 어떤 놈들이 사실도 아닌 것을 사실인 양 날조하고 왜곡한다면 과감히 맞서라고 소승이 말씀드린 것입니다. 분열과 이간질을 통해 이익을 취하려는 놈들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명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