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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15)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15)

6부 5장 귀향

“‘차현 이남 공주강외 배역의 땅’이라는 말은 친궁예를 추종하는 후백제 세력에 대한 배척의 말이라는 뜻이요?”

정충신이 물었다. 인정 스님은 자신의 말이 아직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느꼈던지 다시 길게 설명했다.

“훈요십조에서 말하는 산과 땅의 형세가 배역한다는 지역은 대부분의 충청도 땅과 노령산맥에 막힌 이백 여리 떨어진 전라도 땅이라는 광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차령산맥 동쪽 청주-조치원-부강 일대의 미호천-합강 지역입니다. 청주인들이 왕건에 대한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료로 볼 때, 그곳 친궁예 반왕건 세력을 경계하라는 경고입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친궁예, 반왕건 풍조도 사라지면서 그런 것에 신경쓰는 사람도 없어졌습니다. 훈요십조가 무슨 말라빠진 개뼉따귀라고 거기에 미혹됩니까. 다만 후에 사초를 기록하는 무뢰배들이 정치적 음모 수준으로 날조할 수 있으니 유념하시라는 것입니다. 고려의 문헌이 난리통에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으니, 사악한 자들이 나타나 지역의 유불리로 분칠하기 위해 왜곡할 수 있습니다. 어여튼 소승은 고려를 숭상합니다. 불교국이라서만이 아니라 나라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세운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고려의 통일은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 땅 일부를 정복한 형태의 통일보다 완전한 통일이고, 신라처럼 외세(당나라)를 빌린 것과도 무관한 자주적 통일입니다. 그런 고려국을 나주 토호들과 함께 건국한 뜻을 소승은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고향에 가시면 전통과 기개의 고을 나주도 꼭 방문하십시오. 정 장수 나리는 나주가 본관 아닙니까?”(한국민족문화대백과, 위기백과 등 일부 인용).

“그렇습니다. 나주의 옛 이름인 금성정씨 올시다. 하동정씨에서 12대조 정자 성자 할아버지가 중시조가 되어 금성정씨로 분관하게 된 것이지요.”

중시조 정성(鄭盛)은 하동정씨 도정계(都正系)의 기세조(起世祖) 정석숭(鄭碩崇)의 6세손으로 1330년 고려 충숙왕 17년 문과에 급제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3정승과 왕실의 종친, 사부 등에게 주는 최고급 벼슬)에 올랐으며, 군호(君號)로 금성군(錦城君)에 봉해졌다. 이때 그는 하동정씨로부터 분관(分貫)하여 본관을 금성정씨로 정했다. 정충신으로는 12대조이며, 고려말의 해군제독 정지 장군으로부터는 3대조다.

“우리 집안은 전라도 광주와 나주에 세거(世居:한 고을에 대대적으로 거주)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시라고 하니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집니다.”

“정들면 고향이지요. 전부대장으로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사패지를 받았다면 쓰임새있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소승은 정 장수와 가까이서 벗으로 지내기를 원합니다.”

“고마운 말씀입니다만, 고향을 찾은 뒤 생각해보지요.”

정충신은 망일사로 돌아와 한양의 아들 빙에게 인편을 넣었다. 열흘 쯤 후 빙이 지관 유익을 대동하고 지곡을 찾아왔다. 유익이 대요리 사패지 주변 지형을 살펴보고, 탄성을 질렀다.

“훌륭합니다. 이곳은 크게 발복하고, 크게 부유하며, 크게 번창할 명당입니다.”

“나도 천문 지리에 밝다는 말을 듣고 있지만, 명당은 권세있는 명망가들의 기호품일 뿐, 양지바른 곳은 다 명당이라고 봅니다. 명당은 명예를 닦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지요. 후대의 노력이 없으면 왕릉이라도 묻히고 맙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명당은 후손이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름다운 유택을 방문하면 후손들이 마음 속으로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됩니다. 의젓한 산소를 보고 훌륭한 후손이 되겠다는 결의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정충신이 빙에게 말했다.

“명당은 너희가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렸다. 후손에게 좋다고 하니 나를 이곳에 묻거라.”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지요?”

“묘터를 보니 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만일 어떤 지관이 나타나 묘터가 적합지 않으니 바꾸라고 해도 흔들리지 말거라. 유언이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6월 20일 충청 병사(兵使) 황즉, 병마우후 김달, 서산군수 이민수가 찾아왔다.

“영감이 당진으로 유배오실 때 괄세한 것이 참으로 죄송스럽습니다.”

이민수가 상을 차리게 하고 향토주를 올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역적을 상대하면 화가 미치는 것이니 마땅히 그리해야지요.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면 유배온 자가 더 곤혹스럽소이다. 인심 사납다기보다 세상이 그러하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받아주시니 고맙습니다. 하지만 역적이라니요. 모해를 받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정 장수 나리께서 필연코 복권되리라 보고, 노후에는 이곳에 오시기를 바랐습니다. 나라에서 내린 땅이니 지키셔야지요. 장수 나리께서 고을을 지켜 이곳에 우뚝 서주시기를 간청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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