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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용 광주제일교회 담임목사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문민용 광주제일교회 담임목사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마음에 쓴 뿌리

 문민용(광주제일교회 담임목사)
미국 리 하비 오즈월드 라는 사람은 아버지가 사망하고 1년 동안 보육원에서 살았다. 새 아버지가 들어왔는데 가정은 돌보지 않고 부부싸움이 심했다. 세 번째 아버지 역시 폭행과 어머니를 이용하는 사기꾼이었다.

17세 때까지 22번 이사를 했고 11개의 학교를 거쳤다.

오즈월드 마음에는 이런 것들이 상처가 돼 ‘누가 나를 건드리기만 하면…’ 하고 늘 증오감에 불탔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싸우다가 결국 퇴학 당하고 17세 때 해병대에 지원했다. 해병대 훈련이 세지만 나오면 대우가 굉장히 좋다. 그러나 해병대에서도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우발적인 권총 사고로 두 차례 군사재판에 회부 되고 결국 불명예 제대를 했다.

공산주의 성향에 강하게 젖어있던 오즈월드는 러시아로 건너갔고 민스크에서 한 여인을 만나 결혼해 딸을 낳아 미국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쓴 뿌리로 가득 채워져 있는 오즈월드가 아름다운 결혼생활과 직장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피해의식이 강했던 그는 주위나 아내에게도 공격적이었고 총으로 누군가를 겨냥했다가 실패하고 도망치기도 하였다. 그날도 오즈월드는 총을 들고 댈러스 중심가 교과서 보관창고로 쓰이던 건물 6층 창문가에 섰다.

그리고 1963년 11월 22일 12시 30분, “탕!” 하는 총성이 울리면서 역사의 위대한 거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숨을 거뒀다. 오즈월드에 대해 학자들이 연구하고 연구해 내린 결론은 ‘마음의 쓴 뿌리를 치유하지 못한 사람이 저지른 역사적인 살인 비극’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와 주위 사람들로부터 받은 수많은 상처와 쓰라림을 치료하지 못해 그 상처가 깊게 뿌리를 내려 종양이 됐고 쓴 뿌리가 됐다. 그 쓴 뿌리는 아름다운 꽃이 피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를 통째로 쓰러뜨렸다.

역사를 바꿀만한 위대한 사람 존 F 케네디를 죽였던 것이다.

뇌성마비로 태어나 얼굴까지 뒤틀려 있어서 제대로 말도 하기 힘들고 손도 다리도 몸도 쓸 수 없는 전신 불구인 최웅렬 구족화가를 여러 번 만났다.

6세 때였다. “밥은 먹고 살아야지” 하시며 오른쪽 첫 번째와 두 번째 발가락 사이에 아버지는 숟가락을 끼워주셨다. 그의 몸 중에서 유일하게 안전하고 사용 가능한 부위였다. 그렇게 수 없는 연습을 통해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자 부모는 아들을 초등학교에 보냈다. 가지 않겠노라고 뒤틀린 몸으로 울며 떼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혼자서 화장실도 갈 수 없고 가방조차 들 수 없는데….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는 친구들, 피하며 수군거리는 친구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든 것은 병신이라고 조롱하며 놀리는 친구들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었다.

죽고 싶을 만큼 불구인 자신의 모습이 싫은데 늘 친구들에게 놀림까지 받으니 지옥이었고 원망과 한숨뿐이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답은 없었고 고통의 날들이 연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 모습은 절대로 바뀔 수 없겠지!’ 자신의 모습을 볼수록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최웅렬은 뒤틀린 몸으로 친구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얘들아, 너희들 말대로 나는 병신이야. 그래서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는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 나를 제발 도와줘, 부탁이야 친구들아”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채 더듬더듬 외치는 목소리는 간절했고 슬픔에 찬 절규였고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이 소리 없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미안해 친구야 너를 놀린 것 용서해줘, 이제 우리가 너를 도와줄게. 넌 우리의 좋은 친구야”

그날부터 친구들은 가방도 들어주고 화장실도 데려가 주고 체육 시간에는 없어서 벤치에서 구경할 수 있도록 해주고 공부하는 것도 도와줬다.

비관하며 원망하고 있을 때는 조롱당하고 놀림 받았는데 간절히 도움을 구했을 뿐인데 꿈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학교생활이 즐거워졌다. 어느 날 숟가락을 끼웠던 두 발가락 사이에 누군가 붓을 끼워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계기가 돼 오늘날 유명한 구족화가가 돼 외국에까지 전시회를 다니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50살이 넘은 지금도 그때 그 친구들과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고 있다고 한다.

그날 이후 최웅렬은 어떤 어려움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것이 그가 가진 최고의 재산이라고 한다.

발가락 두 개 외에 어느 곳도 정상인 곳이 없지만, 마음 안에‘유년시절의 상처나 마음의 쓴 뿌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엄청난 보물 창고가 있다.

비참함도, 조롱과 놀림도, 불편함도, 그 창고에 들어가면 문제가 되지 않고 힐링 돼서 나온다.

‘힘들어’ 하는 생각으로 그 앞에 갔는데 ‘힘을 내자’라고 마음을 바꿔주는 보배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는 마음 안에 성숙한 관계를 방해하는 ‘유년기의 상처’ ‘쓴 뿌리’라고도 하는 가지각색의 장애물들을 갖고 있다.

이 장애물을 놔둔 채 겉으로 칭찬이나 웃음을 사용하고 살아가는데 그것은 일시적인 기술일 뿐, 오랫동안 진솔한 인간관계를 맺기는 어렵다.

자기 안의 장애물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쓴 뿌리를 잘라내고 건강한 뿌리가 내릴 수 있도록 제대로 치료해 편안하며 행복한 관계를 회복하는 시작점이 모두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송민섭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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