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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26)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26)

6부 6장 포도대장, 깃발 펄럭이며

1634년 초여름이다. 찌푸린 하늘에 먹장구름이 잔뜩 끼고, 괴이한 바람이 불더니 때아닌 뇌성벽력이 치며 우박이 쏟아졌다. 어느 농가에는 밤톨만한 우박이 내리꽂혀 농사를 망쳐놓았다. 뒤이어 폭우가 쏟아지는 사이 농민 몇사람이 벼락을 맞아 죽었다.

한 밤중엔 도성의 벼슬아치 이자의 집에 떼강도가 들어 그의 아들 둘과 하인이 칼에 찔렸다. 이중 두 사람이 죽고, 네 사람이 자상을 입었다. 이자는 벼슬은 낮았으나 재산이 많아 도성 안에서 꽤 행세하는 사람이었다. 시구문 밖에서도 살인 강도사건이 났다. 도성은 도대체가 뒤숭숭하고 어수선했다. 하룻밤 사이에 사람이 죽어나가고, 재산을 강탈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마디로 치안이 엉망이었다.

“변괴로다. 하늘이 노해 날씨가 사납고, 민심도 변했구나.”

도총부의 이제부가 탄식했다. 그러나 능천군 구인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충청병사를 마치고 지금은 호위청을 맡고 있었다.

“이건 변괴가 아니오. 불한당들이 번개가 치고, 우박이 쏟아지고, 날씨가 변덕이 심한 때를 골라서 사건을 저지른 것이오.”

이런 날씨를 골라 역도들이 사건을 일으키는데 사람들은 괴이한 날씨가 사고를 부른다고 믿었다. 호위청은 인조반정에 공이 있었던 김류와 이귀 등의 훈신들이 숙위(宿衛)가 소홀하다고 하여, 반정 직후 설치해 군영의 체제를 갖춘 군 기관이었다. 왕권 호위로 설치한 기구였지만 실제로는 반정공신들이 군사적 세력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기관으로 어느 면에서는 왕권 견제의 구실을 하고 있었다.

능청군 구인후가 궁궐로 들어가자 김상헌 일파인 도달제가 따라붙었다.

“정충신이 수상하오. 얼마전 최명길을 따르던 젊은 선전관들과 만나 뭔가 모의했다고 하오이다. 그자들이 과격분자들이라서 관원을 시켜 미행을 시킨 끝에 마침내 체포해오다가 반항을 하자 목을 따버렸습니다. 요사이 각종 사건들이 그 끌탕들이 저지른 일이 아닌가 싶소이다. 지금 정충신도 우리가 관찰 대상이오.”

“그럴 리가 없소.”

구인후는 단번에 부정했다. 그는 정충신이 젊은 과격파들과 엮였다면 필시 변을 당할 수 있다고 보고, 왕을 배알했다.

“뭔가.”

상감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일단 아랫것을 다구리해야 왕의 권위가 서는 것이다. 왕은 효사전(孝思殿)에서 선조들을 위한 다례를 주관하기 위해 행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위급한 와중에도 선왕들과 그 부인들을 모시는 예를 취하려는 것이다. 그래야 나라의 태평성대가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었다.

“시중 상황이 요상합니다. 도성 안에 도적의 변이 빈번하고, 민심이 험악하니 포도청을 새롭게 정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포도청을 정비해야 한다고? 어떻게?”

“치안유지의 실패 책임을 물어 포도대장을 교체해야 하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자리에 투철한 원칙을 갖고 근무에 임하는 강직한 군 출신을 기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군 출신? 적임자가 있는가?”

“금남군 정충신입니다. 이괄의 난을 단숨에 해결한 그 실력이라면 어지러운 치안을 당장에 해결할 것입니다. 또한 그 인사로 근무 기강해이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구인후는 정충신이 궁을 지키는 도총부 도총관으로 있는 것이 불안했다. 최명길과 지근거리에 있다면 졸지에 척화(斥和) 대신들에게 발릴 수 있다. 최명길이야 대대로 문반에 오른 전통적 가대이기 때문에 누구도 괄세를 못하지만, 정충신은 홀홀단신 뿌리가 없으니 한번 치면 그대로 하수구에 쳐박히고 만다. 능청군은 정충신의 됨됨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곧은 삶의 자세를 일선 시절부터 알고 마음 속으로 흠모해왔다.

상감이 이윽히 구인후를 바라보았다. 어떤 자는 왕족이랍시고 바른 말도 싸가지없이 하는데 외종 형님인 구인후는 언제나 예의를 차리고 의견도 다소곳하게 타진한다. 외척으로서 공신들간의 대립이나 공신과 일반 사류들 사이의 대립에서도 늘 신중한 태도를 취해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인조는 정충신을 통해 도성을 진정시킬 것이라는 구인후의 판단을 믿었다. 상감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정충신도 불렀다.

“도성이 시끄럽다고 하니, 내치를 다스릴 인사를 단행하겠다. 포도대장에 정충신 도총관을 임명한다. 이제부를 황해병사로 임명한다. 그리고 또....”

최명길과 정충신 지근거리에 있는 자들을 멀리 배속시킨 것은 구인후의 배려이자 계책이었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명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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