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28)

6부 6장 포도대장, 깃발 펄럭이며

의금부에서 관원들이 달려왔다. 연병장에서 권법을 익히던 포졸들이 우루루 달려가 그들을 가로막았다. 포졸들을 인솔하고 있는 포교장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우리는 사헌부의 명을 받고 왔다. 정충신 포도대장을 체포한다. 중대 국사범이다.”

“중대 국사범? 오랏줄에 묶겠다는 말이냐? 이것들이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괭이(고양이) 새끼들이구먼. 여기가 어디라고 껄쩍대냐. 정충신 장수 나리는 그냥 포도대장이 아니다. 그 지체를 모르면 사람 새끼가 아니지. 돌아가라.”

“이것들 봐라. 끝발로 싸우자는 것이냐? 왕명이다. 반드시 데리고 가야 한다.”

“오늘의 포도청은 옛날의 포도청이 아니다. 명분없이 대장을 오라가라 할 수 없다.”

포도청은 전국 치안망을 갖추고 있고, 한성에는 군사조직 못지 않은 강력한 치안조직이 있다. 포도청 하면 육모방망이, 목봉, 오랏줄이 무기의 전부로 알지만 사실은 살상용무기를 대량 보유하고 있다. 살수(殺手:창과 칼을 가진 망나니급)는 검 기창 장창 월도 협도 편곤을 갖추었고, 사수(射手)는 장전, 편전(애기살) 등 활을 갖췄으며, 포수는 화승총 조총을 갖추었다. 이밖에 팽배수(검과 방패), 등패수(삼수병인 살수에 해당), 갑사(갑옷 입은 병사라는 뜻으로 오늘날 부사관급)가 마상편곤 마상창 마상월도 마상쌍검을 갖추었다. 기존의 포도대장들이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거나 방치해버려서 그렇지 도성을 지키는 무기로는 충분한 것이었다.

포도청은 대장이 제대로 부임해 복무 규정대로 근무하면 어떤 군사조직보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민가를 살피고, 치안을 담당하니 주막의 여인네들에 싸여서 주색 밝히느라 부패해버리는데, 정신이 똑바로 박힌 대장이라면 도원수 못지 않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사헌부의 명이다.” 의금부 관원이 다시 소리쳤다.

“사헌부라면 백관을 규찰하고, 관의 기강을 바로잡고, 억울한 일을 없애주는 일을 맡아보는 기관 아니더냐. 정충신 대장 나리께서 부임하자마자 기강과 풍속을 해쳤단 말이냐? 웃기는 놈들일세. 돌아가라.”

“정충신의 혐의가 사납다. 도둑을 잡으라는 일은 안하고, 중국 사신을 잡아버렸다. 깨 홀딱 벗겨서 쫓아내려고 했다니 중대한 국사범이다. 어찌 감히 대국의 사신을 능멸한단 말이냐. 어사대 보고를 받고. 대사헌 대감이 직접 명을 내렸다.”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를 듣고 정충신이 집무실에서 나왔다.

“무슨 일이냐.”

포교가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읍했다.

“어린 것들하고 다투지 마라. 말을 대령하렸다.”

“저희가 따르겠습니다.”

정충신이 행차하는데 포졸 백 명이 뒤따랐다. 막강한 군세였다. 도성 사람들도 이런 행차를 보고 위세에 놀라고 있었다. 정충신은 포졸들을 경복궁 뜰앞에 멈춰 서있도록 하고 궁내로 들어갔다. 중신들 앞에서 그가 인사하고 따져물었다.

“포도대장은 도둑을 잡고 도성의 치안을 살피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중에 벽제관에 웬 낯선 도둑이 들었기로 달려가 족쳤나이다. 뭐가 잘못되었소이까?”

중신들이 서로 멀뚱히 바라보며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충신의 가오에 눌려버린 것이다.

“나는 포도대장으로서, 도총관으로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소이다. 도적놈을 도적놈으로 때려잡는 것은 포도대장이 할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중신들은 끽소리 못하고 있었다. 하긴 그는 왕으로부터 금방 중책을 맡았고, 나쁜 일을 할 새도 없었다. 게다가 궁궐 밖은 포졸 백여 명이 온갖 무기를 갖추고 대기하고 있다. 망신을 당할 수 있고, 여차하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

“정 장수가 잘못 본 것이오. 어서 돌아가시오.”

한 중신이 나섰다. 그는 당장 맞짱뜨는 것보다 뒷날을 도모하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길길이 날뛰는 놈은 한 숨 꺾여 잠잠해질 때 역습을 가해 목을 따버리면 된다. 그때 궁궐 호위장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나리, 난리가 났습니다. 다동골에 큰 도둑이 들어 사람이 죽고 수백가지 재물이 강탈당했다고 합니다!”

정충신의 그의 말을 놓치지 않고 외쳤다.

“나는 지금 도둑패를 잡으러 가오이다. 스물네시간 안에 잡아들이겠소. 잡아들이지 못하면 이 직을 던지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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