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경 더킹핀 대표의 남도일보 독자권익위원 칼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배미경 (더킹핀 대표/호남대 신방과 초빙교수)

우울한 기분이 자주 느껴지는 요즘이다. 보이지 않는 코로나의 공포가 광주를 엄습해 오고, 철인3종 경기 유망주자였던 고 최숙현 선수 사망 소식까지 더해진 탓이다. 세상을 등진 최 선수는 구타와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고 최숙현 선수의 명복을 빈다. 지난해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심석희 선수가 억압적 위계 속에서 코치에 의한 성폭행을 폭로해 사회적 충격이 컸다. 이후 여러 종목에서 증언이 이어지면서 스포츠 강국이라는 화려한 간판 아래 피멍이 든 젊은 선수들의 인권 문제가 실체를 드러냈다.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무색하게 스물둘 꽃다운 청춘이 또 생을 마감했다. 야만과 폭력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제어한 인간 이성의 승리 영역이 스포츠라고 말한다. 하지만 스포츠 현장은 야만과 폭력이 지배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지난 15일 스포츠 포럼 <실천>이 ‘고 최숙현 선수 비극을 통해서 본 한국체육의 슬픈 현실’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주제발표에 나선 최동호 소장(스포츠문화연구소)은 ”우리 스포츠계는 ‘인권, 공정’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직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누가 한국스포츠를 이끌고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비극적 현실의 가장 큰 원인을 스포츠 리더십의 부재로 꼬집은 것이다. 그의 문제 제기에 공감한다. 덧붙여 주문하자면, 리더는 스포츠의 사회적 위상 강화를 중요한 과제로 삼았으면 한다.

광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우리 사회 영역에서 스포츠의 포지션은 어디쯤일까 자문해보았다. 스포츠를 국위 선양과 국민 통합의 수단, 국민의 놀잇감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스포츠 미투 이슈는 시대적 판 변화에 대한 감수성 부재 탓이 크다고 본다. 이 지점에서 미디어의 역할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스포츠 뉴스에서는 경기 순위와 승자 중심의 경쟁적 요소가 부각되었다. 스포츠 환경 및 행정, 선수들의 인권은 뉴스의 중요한 소재가 되지 못했다. 책무가 큰 공영방송도 마찬가지다. 이런 오랜 관행과 관성이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를 부차적인 것으로 위치 지우는데 기여했다고 본다.

최근 미투운동에 대한 한국과 미국 언론의 보도를 비교 분석한 연구가 진행돼 눈길을 끈다. 우창완 교수팀(미국 제임스 매디슨 대학)이 한국과 미국의 언론성향에 따른 미투운동 보도 형태를 조사해 지난해 토론토에서 열린 한 커뮤니케이션 학회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다. 516건의 미투 관련 기사를 내용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진보 매체는 미투 이슈를 ‘사회적 운동’으로 프레임을 형성하는 반면, 보수 언론은 ‘섹스와 갈등의 선정주의’라는 관점을 취하고 있었다. 미투현상 본질에 대한 접근보다는 낚시형 제목과 이슈몰이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보도 양태가 강하다는 점이다.

우 교수는 “미국의 언론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지면에 상당 부분 할애하는데 반해 한국 언론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잘 반영하지 않는다”며 “한국 언론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숨기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위드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건은 많은 생각을 던져줬다. 코로나 19라는 직격탄이 우리 사회의 판의 변화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스포츠계에 드러난 감수성 부재 양상은 새로운 판 변화에 대한 부적응을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조명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판 변화가 필요한 때다. 거듭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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