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30)

6부 6장 포도대장, 깃발 펄럭이며

“정충신 저 늙은이 뻣뻣하게 나가는 것 보니, 필시 뭔가가 있는 것 같소. 포도청 졸개들 믿고 맞짱 떠보자는 것인가? 최명길 대감 참 앞뒤도 못재는 사람이야. 공연시 불러들여가지고 분란을 일으키니 말이오.”

지사가 골머리라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주류파로부터 세에 밀린 최명길이 힘을 얻기 위해 주화파인 정충신을 불러들인 것을 그는 화근으로 보고 있었다.

“어려울 것 없소이다. 우리가 일을 만들면 되니까요. 만들어서 도태시켜버립시다. 포도대장직을 박탈해버리자고요. 밀어내면 지까짓 게 무슨 용을 쓰겠소?”

“명분이 마땅치 않은데?”

“명분이야 만들면 부지기수요. 누구 하나 벼슬 자리 높여주는 조건으로 구워삶아서 저 자 돈을 왕창 먹었다고 불도록 합시다. 폭로자는 사후를 보장하면 되니까, 걱정할 것 없소.”

“잘못되면 우리가 역으로 당하오.”

“그러니까 당차게 해치워야지요. 힘이 우리한테 있는데... 포도대장직 이용해 지저분한 계집질에 돈쳐먹고 부잣집을 위협했다고 몰아갑시다.”

“다른 건 몰라도 정충신에겐 계집질은 해당이 안되오. 음주가무나 여자를 밝히지 않는다는 건 널리 소문나지 않았소?”

“그게 대수요? 아녀자를 구워삶아서 아녀자가 추행을 당했다 하고, 그것도 한두 년이 아니라 대여섯 년 집어먹었다고 불도록 합시다. 거기에다 명나라 사대를 외면하고 여자들을 후금 오랑캐놈들에게 상납했다고 여론몰이하면 저것 꼼짝없이 당합니다. 무고 같은 것 해당 사항없소. 우리의 힘이 세니 밀어붙이면 다 되는 거요. 소문은 퍼지기 쉽고, 잠재우기는 어렵소. 마른 짚덤불에 불붙듯이 확 번질 것이요. 그러니 선제공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오이다. 그러면 용 한번 못쓰고 무너질 거요.”

“그렇게 정적 제거를 해왔지만, 근본이 워낙 맑은 정충신에게는 해당이 안될 것 같은데?”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오. 저런 놈 밟기는 깨구락지 밟는 것보다 쉽다니까요. 따지고보면 뒷배 없는 놈 아니오.”

“알겠소.”

이런 대화를 나누고 그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편 정충신은 중신들에게 한마디 더 내지르려다가 그만 두고 밖으로 나왔다. 고뿔 때문에 왕이 내전에 머물러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소문이 나고, 그러면 사세가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정충신이 궁 밖으로 나와 도열해 있던 포졸들에게 명했다.

“가자. 다동골 부잣집에 도둑떼가 들었다고 했겄다?”

그는 궁중에 들어가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한 것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포교로부터 들은 것을 상기했다.

“대장 나리, 이미 기동타격대가 쫓아가서 도둑떼를 일망타진하였습니다. 청으로 가시지요.”

정충신이 포졸들을 인솔해 포도청으로 이동했다. 보신각 앞을 지나는데 꾀죄죄한 거지꼴의 사내가 바랑을 멘 채 종각을 들여다보며 수상쩍게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상에서 내려다보던 정충신이 포교에게 “저 자 거동이 수상하다. 체포하라”고 눈짓을 보냈다. 포교와 포졸들이 일시에 덤벼들어 거지를 잡으려 했으나 그 자가 맨주먹으로 포졸들 얼굴과 복부를 가격해 굴비 엮음처럼 한 줄로 쓰러뜨렸다. 무서운 무술이었다. 그 자는 거지로 변장한 무사임에 틀림이 없었다.

“네 이놈!”

소리치며 정충신이 말을 몰아 거지에게 달려들자 그자가 말을 피해 서대문 방향으로 도망쳤다. 정충신이 뒤따르며 채찍으로 그 자의 머리를 사정없이 후려쳐 쓰러뜨렸다.

“이놈을 포박해서 당장 청으로 연행하라.”

포도청에 연행된 그 자의 바랑을 수색했는데, 세밀하게 그려진 조선 지도가 나왔다. 지도에는 강화도, 남한산성 등 각 고을명과 거리가 기록되었고, 한양과 북방 지역에 배치된 군병의 숫자와 군량 저장 창고가 기입되어 있었다. 정충신이 포교와 포졸들을 둘러세운 뒤 그 자를 무릎 꿇렸다. 정충신이 벽력같은 소리로 외쳤다.

“네 이놈, 네가 아무리 거지로 변복해도 나는 못속인다. 너는 후금에서 밀파된 간자렸다?”

그 자가 눈을 껌벅거리며 손사래를 쳤다.

“네 이놈, 네놈이 머리 꼬랑지를 잘랐다고 해도 여진족이다. 여진족은 일찍이 유목민족으로서 몸에서 말똥 냄새가 풍긴다. 각 민족마다 특유의 체취가 있는데 너는 평생 말과함께 살았으니 몸에서 말똥냄새가 난단 말이다. 그리고 내가 얼마전 건주(建州)에 갔을 때, 너를 만난 적이 있다. 너는 누루하치의 막료장 마부대(馬夫大)지?”

그가 깜짝 놀라며 뒤로 주춤 물러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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