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31)

6부 6장 포도대장, 깃발 펄럭이며

실제로 마부대는 병자호란 전 조선 정국을 염탐하기 위해 압록강을 여러차례 넘나들었다. 어느때는 사신단으로 들어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도성을 정탐하고, 각 부대의 동태를 살폈다. 조선 정국을 교란시키기 위해 첩보원들을 여러 사람의 마부대로 변장시켜 암약했다. 정충신에게 붙잡힌 자도 진짜 마부대일 수 있고, 가짜일 수 있었다. 그 자가 말했다.

“나는 마부대가 아니다 해.”

“니가 마부대든 아니든 정보 탐지를 위해 우리나라에 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장차 우리나라에 위해를 가하려고 수작을 짜는 것 아니냐.”

포졸들이 그를 옥에 가두고 늑신하게 팼다. 늘어진 그를 내려다 보면서 한 포교가 보고했다.

“포도대장 나리, 이 자가 용골대일 수 있습니다. 쌍으로 움직이니 섞달립니다.”

“신원을 파악하라. 그래도 너무 패지는 말어라.”

용골대는 만주 정백기(正白旗) 타타라 가문의 무장이었다. 라우닝성 남쪽 압록 변경에 살면서 집안 대대로 누르하치에게 충성하는 무골 집안인데, 여러 전쟁에서 무공을 세워 참장(參將:오늘의 육군참모차장)에까지 오른 위인이었다.

용골대는 누르하치가 죽은 후 대를 이은 청태종 홍타이지의 신임을 얻어 마부대와 함께 조선과 청을 오가며 양국의 외교를 조율했다. 1635년 칭제건원(稱制建元:나라를 세운 왕이 연호를 정함)을 통보하기 위해 조선에 왔을 때, 그는 목이 달아날 뻔했다. 온화하게, 때로는 과격하게 조선 조정을 주물렀는데, 조정은 이것이 몹시 비위에 거슬렸다. 후금을 애초부터 나라라고 치부하지 않았고, 용골대 따위 장수는 뒷골목 거렁뱅이 취급을 했는데 하는 꼬라지가 부모국 명나라 행세를 하는 것이다. 대신들은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저 싸가지 없는 육시랄 오랑캐 놈을 족쳐라” 하며 목을 베려고 했다. 용골대는 잽싸게 민가의 말을 훔쳐 타고 도주했다.

“니놈들 두고 보자.”

이렇게 이를 뿌드득 가는데, 이번에는 마부대가 들어왔다. 그런데 어느놈이 진짜 마부대인지 알 수 없었다. 마부대는 인열왕후(인조의 비로 소현세자와 후일의 효종인 봉림대군과 인평대군, 용성대군을 낳았다)가 마흔 두 살 늦은 나이에 또 아이를 낳다가 과다출혈로 죽자 조문사절단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왔다. 기왕 온 김에 조선과 교린(交隣)을 강화하려고 교섭했는데 또다시 조선 대신들로부터 거렁뱅이 취급을 받고, 도리어 체포되어 처형 직전까지 몰렸다. 이렇게 망신을 당하니 병자호란 때 조선을 침략할 때 수십 만의 인질을 끌고가는 등 악행을 저질렀다.

“호되게 다루지는 말고 예우를 갖추라. 밥도 제때 주어라.”

정충신은 후금과는 선린을 취해야 한다는 논리를 갖고 있었다. 그들이 조선에 들어온 것은 명과 거리를 두기를 바라는 데 뜻에 있었고, 침략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조정은 외교라는 개념없이 오직 명나라에만 의존하니 청나라 건국을 목전에 두고 있는 후금으로서는 뒤에 또다른 적을 둘 수가 없다는 이유로 청을 들어주지 않을 바에는 조져버린다는 생각으로 조선을 자주 드나들고 있었다.

“저 자를 죽이지 않으면 중신들로부터 오해를 살텐데요? 없애야 나리께서 오해를 면합니다.”

“이놈아,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느냐. 외교란 그런 것이 아니다. 진상을 밝히기 전까지는 예의를 갖추고 잘 먹여라.”

정충신은 누루하치의 둘째아들 다이샨 패륵과의 우정을 생각해 간자를 심하게 다루지 않도록 거듭 당부하고 뜰로 나갔다. 성문을 지키고 있던 포교가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나리, 상감마마께옵서 모화관까지 거동하시어 명나라 사신을 전송하였다고 합니다. 명나라 사신이 얻어가지고 간 물건이 백금 12만냥, 인삼 1400근, 내탕금(임금이 내탕고에 넣어 두고 개인적으로 쓰던 돈)이 수십 만냥이라고 합니다.”

“뭐라? 그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

지금 지불하는 공물은 명 황실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부패한 관리들이 착복하기 위해 가져가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것은 후금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후금의 사신을 개똥 취급하듯 하면서 명나라에게는 변함없이 과도한 공물을 바친다. 썩은 명에게는 떡시루에 물붓기 식으로 국고의 상당액을 바치니, 정충신은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말을 몰아 조정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하면 아니되오이다.”

그러나 그를 고깝게 여기던 사간원의 지사가 나섰다.

“정충신 포도대장, 지금 이런 문제에 개입할 때가 아니올시다. 도적떼가 도성을 어지럽히고 있소. 도성 치안부터 챙겨야 하는 것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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