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호 구례군수읜 남도일보 자치단체장 칼럼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김순호(구례군수)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란 어디에 있는가. 향기로운 한 잔의 차를 통해서도 누릴 수 있고…(중략) 개울물 소리처럼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을 지닐 수 있다면,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그 맑고 향기로운 삶은 어디에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 그릇에 알맞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올해 열반 10주기에 드신 법정 스님의 말씀이다. 마치 10년 후에 일어날 사회 현상들을 예견하신 것일까? 소소한 일상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소확행’은 사회 전반의 메가트렌드가 되었고, 세계를 이끄는 IT 기업들은 개개인의 행복 요소를 알아내기 위해 AI, 빅데이터를 비롯한 첨단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행복에 대한 논의는 중요한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룸에도 불구하고 ‘불행’이라는 그림자가 사회 도처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2018년 1인당 GDP는 전 세계 국가 중 28위이다. 그러나 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 노인 빈곤율은 우리가 이룬 경제 성장이 행복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초개인화사회에서 정부는 새로운 문제와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GDP, 경제성장률, 국가예산 ? 곧 양적성장으로 반영되어왔던 국가의 목표를 주관적인 국민의 행복으로 바꿀 수 있을까? 정부가 개인의 행복을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여 국민들의 행복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행복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케임브리지대 센 교수(Amartya. K. Sen)와 시카고대 마사 누스바움 교수(M. Nussbaum)는 역량이론을 주창하며 인간의 7가지 행복 영역을 제시했다. 7가지 행복 영역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의미를 실현하는데 필요조건으로서의 기초역량(건강, 안전, 환경, 경제)과 그 다음 단계의 자아실현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위역량(교육, 관계 및 사회참여, 여가)이다.

최근 국회미래연구원은 역량이론이 제시한 7가지 행복영역에 ‘주관적 만족도’를 더하여 도시별로 행복지수를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행복지도’를 만들었다.

조사결과 행복지수 상위 20%에 해당하는 지역은 수도권과 호남권에 집중됐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영남이 호남보다 높았으나, 건강, 환경, 관계, 여가분야는 호남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경제가 행복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라남도에서는 구례군이 행복지수 1위를 기록했다. 전국 군 단위 지자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10대 행복도시’에 선정됐다. 교육과 경제지표는 하위권이었으나 건강, 안전, 환경, 여가, 관계, 삶의 만족도 6개 지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환경, 삶의 만족도, 여가, 안전 4개 지표가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그중 전국 최상위권의 환경 지표가 순위를 갈랐다.

이는 예산규모, 인구수 등으로 책정해왔던 전통적인 지자체의 평가지표가 주민들의 행복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구례군은 예산규모도, 인구수도, GDRP(지역내총생산)도 전라남도에서 가장 적다. 재정자립도는 전남에서 17위로 하위권이다.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해왔던 것은 양적인 성장이 삶의 질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국민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가정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대전제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양적 성장에서 국민 행복으로 국가목표를 전환하는 첫 출발점이다.

대한민국의 대전환을 목표로 하는 ‘한국판 뉴딜’이 선도형 경제를 표방하는 ‘디지털 뉴딜’과 더불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포용사회로 전환하는 ‘그린 뉴딜’을 한 축으로 내세운 것은 국민 행복이라는 국가목표에 매우 부합하는 일이다.

선도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목표와 지표에 대한 혁신도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국민의 행복을 나타내는 지표는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가장 친환경적인 도시, 많은 국민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역량 있는 도시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해야할 것이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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