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37)

6부 6장 포도대장, 깃발 펄럭이며

“최경운 선생의 손자라, 최경운 선생은 능주(화순)가 고향 아니시더냐. 그런데 니가 어찌하여 여기에까지 와있느냐.”

“막내 할아버지를 모시기 위해서지요.”

“막내 할아버지?”

“네. 최자 경자 회자 할아버지입니다.”

“옳거니, 그렇구나.”

정충신이 저절로 무릎을 쳤다.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부터 숙연해졌다. 최경회는 문과에 급제, 영해군수로 근무 중 임진왜란이 나자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로 참전했다. 이에 앞서 장형 죄경운의 지시를 받고 거병해 의병을 모으기도 했다.

2차 진주성 싸움(1593.6)이 벌어지자 최경회는 나주 출신 창의사 김천일과 그 아들 김상건, 장수 출신 충청병사 황진, 의병장 이계련·민여운·강희열, 김해부사 이종인, 고경명의 장남으로 이치전투에서 전사한 아버지와 동생 고인후의 복수를 한다고 스스로 복수 의병장이 된 담양 출신 고종후 등과 함께 진주성을 지켰다.

호남의 의병장과 병사들이 이렇게 한결같이 진주성으로 집결한 것은 진주목사 이경과 그 부하 군사들이 모두 지리산으로 도망갔기 때문이다. 1592년 10월 진주성싸움 1차전 때 진주목사가 도망을 가고, 군사들마저 흩어지자 충청도 목천 집에서 쉬고 있던 김시민이 목사 발령을 받고 현지 부임해 백성들을 진두지했다. 이 과정에서 김시민이 목사 발령 한달만에 전사하고, 진주성은 파괴되었다.

다행히도 공격해온 나가오카 다다오키 휘하의 왜군 2만 명은 서울 함락이 최우선적 목표로 북상을 서둘렀기 때문에 진주성 싸움은 거기서 그쳤다. 이때 비어있는 진주를 지키기 위해 호남의 군사들이 들어왔다.

“왜군은 필연코 다시 쳐들어올 거야. 그것들은 미처 다하지 못한 설거지를 꼭 마저 하겠다는 못된 습관을 갖고 있거든.”

그렇게 예상했던 김천일, 최경회, 박광옥, 김상건은 백성들과 함께 성을 쌓고, 왜의 침략에 대비했다. 후방에서는 곽재우 의병군이 배수진을 쳤다.

조선에 들어와 전투마다 승승장구하던 왜군은 진주에서의 1차전 패배가 큰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1차전의 패배를 만회하고 호남으로 통하는 관문을 통과, 병참선을 확보하기 위해 진주성 공략을 준비했다.

1593년 6월 왜군은 1군단 고니시 유키나가, 2군단 가토 기요마사가 이끈 수 만 병력과 800척의 선박을 동원하여, 함안, 반성, 의령을 점령하고 2차 진주성에 입성했다.

한 순간에 10만 적병들의 공격을 받자 재축성한 진주성이 허물어지고 수만의 백성이 죽었다. 2차전 개전 9일 만에 조선군이 대패하고, 성이 함락되자 최경회는 김천일, 고종후와 함께 남강에 투신자살했다.

이 소식을 들은 최경회의 부실(副室)이자 관기인 논개가 왜장이 축석루에서 연회를 벌일 때, 지아비인 최경회의 원수를 갚기 위해 승전장(勝戰將) 게야무라 로쿠스케 목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해 함께 죽었다.

사천과 고성을 방어하고 있던 최경회의 형 최경장이 그 아들 최홍재, 조카 최홍우, 최홍기와 함께 진주성으로 들어왔으나 중과부적 앞에서는 무력했다.

최경운은 1597년 정유재란 시까지 왜적과 싸우다 끝내 생포돼 죽었다. 최경운, 최경회의 장형 최경운은 조선 의병의 상징이었다.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해 문신의 길로 들어섰지만 임진왜란이 나자 의병청을 세우고 전국망을 펼쳐 거병을 독려하면서 동생들과 조카들을 전장으로 내보냈다. 그런 할아버지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그 손자가 묘역을 지키고 있다.

“너의 가대는 참으로 훌륭하다. 그 뜻을 네가 받들고 있구나. 거룩한 일이다.”

“소인 가대만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해남출신 하동정씨 정운 장군은 이순신 장군의 막료장으로서 장렬하게 전사하셨고, 이순신 장군의 스승인 정걸 장군은 아들 정연, 손자 홍록과 함께 3대가 의병으로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인물입니다.”

“너의 할아버지들 역시 훌륭하시다. 비록 패했으나 가르친 바가 적지 않다.”

정충신은 패했어도 백성들을 일으키는 전쟁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고도 이긴 싸움. 패배했지만 다른 경상도 지역을 보존했으며, 적으로 하여금 전라도를 넘보지 못하게 했다.

“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재임 중 전적비를 세울 것이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