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40)

6부 7장 병자호란 전야 6

접반사의 보고를 받은 조정 중신들은 접반사보다 더 날뛰었다. 무쇠솥에 콩볶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한마디씩 했다. 한마디 하지 않으면 충신이 아닌 것처럼 비쳐질 정도였다.

“가히 무식한 놈들이 천자가 되었다고 날뛰다니 오만방자하고 무엄하구나. 300년 대명(大明) 앞에서 짓까분다고 지들 세상이 되느냐. 할딱 벗겨서 쫓아버려라.”

“맞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발호하니 우리가 대신 혼을 내줍시다. 예의지국의 체모를 짓밟은 무례함을 용골대와 마부대에게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하오이다!”

“예법을 모르는 만족(蠻族)이라서 접어 생각했소만, 이 지경까지 무례한 줄은 몰랐소! 당연히 쫓아버려야 할 것이오.”

그들의 완고한 고집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요절을 낸단 말인가. 청은 명나라를 굴복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고, 조선 침공의 빌미를 찾고 있는데, 조선의 문무백관들은 흰 수염 휘날리는 체통만 갖고 있을 뿐, 어떤 비장의 무기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한 방에 날려버릴 것이야!”

문무백관의 기세에 이어 교리옥당(校理玉堂:홍문관)과 상대백부(霜臺柏府:사헌부), 사간원의 글 잘하고 씩씩하고 기운찬 3사(三司)들도 들고 일어났다. 장령 홍익한이 앞장서 상소를 올리고, 대사간 정온도 뒤이어 상소를 올렸다. 만인(蠻人)은 지체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어떤 누구도 도성을 더럽힐 수 없으며, 이들의 행차를 열어준다는 것은 250년 종묘사직을 능멸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도성은 마침내 북평관에 머물고 있는 청나라 사절단을 당장 끌어내 아작을 낼 듯이 여론이 들끓었다.

“이 새끼들이 디질라고 환장했어. 싸움을 입주뎅이로 하나? 휘날리는 수염으로 하나?”

청나라 사절단을 굴복시킨다는 첩보를 받은 용골대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마부대 역시 참을 사람이 아니었다.

“백마디 문장이 호마(胡馬)의 발차기 하나를 당할 것 같으냐? 조상의 나라라고 일견 봐주었더니 찾아온 손님한테 깽판을 치고, 꼴값을 떠는군. 요것들 개창내버리자! 올해가 분명 병자년이렸다?”

“그렇지. 병자년은 이놈들의 제삿날이야. 요것들이 명나라 사신은 영빈관에 머물게 하고, 계집들까지 붙여주면서 깎듯이 접대하고, 우린 개밥그릇 취급했다 이거지? 환장하지 않고는 이러지 못하지. 세상 돌아가는 물리를 모르는 것들이 어떻게 나라를 운영한다고 궁중에 똬리 틀고 자빠져 있나? 그렇게도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모르나? 본떼로 조자버릴 것이야!”

똑같이 대우해도 섭섭할 판에 싸구려 객관에 머물게 하니,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크고, 치욕적이다. 원한이 커져서 복수심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양측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 버티고 있을 때, 북평관으로 말을 달린 사람이 있었다. 최명길은 왕에게 상소문을 써 올리고 북으로 말을 달렸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낭패를 당한다고 본 것이다. 최명길의 상소문은 이랬다.

-소신, 장차 크나큰 국난을 염려하여 상소문을 올리나이다. 어차피 칸(汗)하고는 정묘년에 형제지국의 의를 맺은 것인즉, 치제(致祭:왕족과 신하의 죽음에 제문과 제물을 보내는 일)와 사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바이니, 칸이 천자위(天子位)에 나간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찾아온 손님을 박대할 수 없습니다. 차선책으로 대궐 안에 이들을 들이지 말되 궁궐 밖 금천교 쪽에 따로 군막을 쳐서 조문을 받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만인을 예우하는 것도 문명국의 법도이옵고, 예의지국의 본보기가 됩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자 당장 궁중에서 들고 일어났다. 명나라를 상대하지 말고 청의 편에 서자는 자는 배신자라고 낙인을 찍었다. 최명길을 잡아들이라고 소리소리질렀다. 이에 최명길도 지지 않았다.

-결코 명나라를 멀리하자는 것이 아니다. 척화 세력의 강경 정책이 국정 운영의 중심이 되는 것이 걱정일 뿐이다. 물리를 모르고 우격다짐을 하는 것은 광인이 도끼 들고 날뛰는 꼴이다!

최명길이 안현고개를 지나 홍제원으로 들어가는데 길을 가로막는 군인들이 나타났다.

“어디 가시는 거요?”

가로막는 무리는 명령을 받고 출동한 궁중 호위부 군교와 그 부하들이었다.

“청나라 사절단을 만나러 간다.”

“무슨 일로 만나시렵니까.”

“상감마마의 진의를 알리러 간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우리는 형제지국의 의를 맺은 이상 청나라를 원수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묘 화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사소한 것으로 성질 급한 그들을 날뛰게 해선 안된다. 진정시켜야 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사단이 날 것이다.”

“우리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명대로 따를 뿐입니다. 너희들, 최명길 대감을 모셔라.”

군교가 명령하자 궁중 호위병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최명길을 말에서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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