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곡 ‘카루소’를 들으며

신일섭(전 호남대학교 교수)

요즘 장마가 계속되면서 삶 자체가 무겁고 음습하다. 그냥 맥이 풀리고 가슴이 아려오기도 한다. 쉽게 보낼 수 없는 그리운 사람 때문인가 보다. 약 한 달 전 우리 사회에 큰 충격과 슬픔을 주고 간단한 유서 한 장만 남겨놓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가 버린 사람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일 것이다. 하지만 세간의 입씨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좀 야속하다. 우리는 무엇으로 대답해야 할까.

가끔 이승을 떠난 사람이 정말 그리울 때가 있다. 드문 일이지만 이미 이승이 아닌 저승의 사람이 그리움으로 꿈에 나타나 깜짝 놀라 깨어날 때도 있다. 이런 때 마음을 달래고자 망자를 위한 추모곡 내지는 진혼곡을 찾아 진하게 듣는다. 추모곡에는 안타깝게 저승으로 떠나가 버린 사람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절실히 담겨있다. 동 서양에서도 기념할 만한 추모곡들은 일반 대중가요부터 고전음악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지만 이 가운데 모짜르트나 베르디의 리퀴엠(requiem)은 종교적인 미사곡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에 필자는 빼놓을 수 없는 추모곡 ‘카루소(Caruso)’를 말하고 싶다. 이 곡은 이탈리아 세계적인 오페라 테너 가수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를 기리기 위해 1986년 칸초네 가수이자 연주자, 작곡가였던 유명한 루치오 달라(L.Dalla)에 의해 작곡되었다. 카루소 사후 65년만 이었다. 루치오 달라는 직접 카루소의 고향 나폴리를 찾았고 그가 묶었던 호텔 방에서 잠을 자며 반세기도 훨씬 전의 카루소를 상상하며 추모곡 ‘카루소’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지난 20세기 초 세계 최고의 테너 카루소가 세상을 떠난 후 음악계에서는 “카루소 이전에 카루소 없고, 카루소 이후에 카루소 없다”고 할 만큼 최고의 평가를 하였다. 이탈리아 남부 지방 나폴리의 가난한 가정에서 어렵게 자란 카루소는 그의 타고난 자질과 노력으로 20세기 초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목소리 하나로 휩쓴 성악계의 영웅이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를 십 수년간 가득 메웠던 팬들을 울고 웃기며 명성을 날렸던 카루소는 병마로 쓰러져 그의 고향 지중해 바다가 보이는 나폴리로 돌아와 48세의 젊은 나이로 마지막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이탈리아가 낳은 전설적인 오페라 테너 가수 카루소! 불후의 명성을 가진 선배 성악가를 기리기 위해 추모곡을 만들었던 루치오 달라는 몇 년 후 파바로티와 함께 듀엣으로 ‘카루소’를 노래했다. 루치오 달라의 감성넘친 피아노 연주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는 애절한 속삭임 그리고 파바로티의 먼 허공을 향해 호소하는듯한 열창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떠나는 65년 전 카루소의 안타까운 심정을 잘 노래하고 있다.

필자는 테너 가수 엔리코 카루소를 위한 추모곡 ‘카루소’를 처음 들었을 때 곡의 환상적인 선율과 리듬에 반해 지금까지 즐겨 들어오고 있다. 이미 떠나가 버린 사람을 반세기가 훨씬 지난 다음에도 이토록 아름답고 리얼하게 추모곡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당시 카루소의 사생활은 불행했으며 마지막 연인으로 연하의 젊은 여성을 곁에 두고 불귀의 객으로 떠났다. 하지만 오페라 가수로서 그의 능력과 명성은 모든 것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여러 방향에서 파악할 수 있다. 자주 비교되는 이야기이지만 한국의 중산층 기준은 아파트 크기나 승용차의 규모 그리고 연봉 액수 등 부(wealth)의 소유 정도가 중심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외국어나 악기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사회를 위한 정의감, 사회공헌도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전체적인 삶과 가치관 등을 보고 좀 더 인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인생을 자신보다는 시민운동과 사회적 공익을 위해 살아왔고 집 한 채 없이 7억원이라는 거액의 빚만 남기고 떠난 고 박원순시장에게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더 요구할 것인가. 답답하다. 요즘 긴 장마속에 고인을 위한 추모곡이나 진혼곡들을 찾아 들으면서 마음을 달래고 싶다. 추모곡 ‘카루소’ 음악을 들을 때 마다 그의 능력과 성공, 명성 그리고 불행까지도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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