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우연이겠습니까?
김홍식(광주국·공립중등교장회장/일동중교장)
 

한마디로 재난의 시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세상을 온통 뒤흔드는 상황 속에서 상상을 초월한 기록적인 폭우가 우리의 생명과 터전을 휩쓸며 위협하고 있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이렇게나 적확하게 쓰일 수 있을까 싶다. 불행이나 비극은 외롭게 혼자 오지 않는다더니 한꺼번에 몰려와 우리들의 삶을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여기에 또 어떤 재난이 가세하여 재난의 시대를 더욱 공고히 할지 실로 두려움이 앞선다.

전에 ‘자연’이란 ‘우주 또는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사물이나 현상 또는 인간의 세계와 독립하여 존재하는 우주의 질서와 현상’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모두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냐 아니냐는 논쟁은 여기서 논외로 하자.

이 개념대로라면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현상이 아주 당연한 자연의 질서에 따른 결과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아주 낯설고 충격적으로 겪는 모든 재난은 그냥 우연이 아니다. ‘자연’의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자연의 입장에서는 주어진 조건에 따라 가장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지켜가려는 스스로의 작용이니까.

하지만 인간들로서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각종 재난 상황이 우연으로 느껴지면서 매우 기이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털끝만큼도 원하지 않았고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은 일이기에 더욱 그렇게 생각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우연이란 인간의 지식과 논리로 적절하게 설명이 어려울 때 편리하게 쓰는 말이 아니던가.

지극히 원론적인 말이지만 자연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야 자연이다. 그렇다면 자연 현상으로 인해 생기는 모든 재해는 자연만을 탓할 일이 아니다. 자연을 자연답지 못하게 자꾸 훼손하고 파괴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인간들의 탐욕이 자연에 대한 심각한 착취로 이어지면서 지구 환경·생태 문제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인간이 자연을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그로 인해 인간이 겪게 될 재난의 강도는 그만큼 커지고 심각해질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재해를 통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를 무섭게 받아들여야 한다. 거칠고 험악하게 남긴 인간들의 생태발자국을 겸허하게 뒤돌아보며 자연환경에 가한 폭력의 실상을 뼈아프게 인정해야 한다.

뺨을 때리면서 맞는 사람에게 왜 기분 나쁘게 인상 쓰느냐고 하면 이게 말이 되는가. 고의가 아니었다거나 악의가 없었다는 말로 넘어가서도 안 된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인간의 욕망 크기에 비례해 왔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문명의 팽창과 더불어 늘어나는 탄소배출량 때문에 지구의 기온은 상승하고 있고, 이로 인해 인류의 미래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기후위기 수렁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인간답지 못했고 현재도 여전히 그러하다. ‘인간답다’는 말은 인간 중심의 이기적인 인간다움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을 포함해서 자연과 자연 속의 모든 동·식물 앞에서도 폴 W. 테일러의 자연존중 태도와 같은 생각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각종 재난은 자연의 재난이 아니라 인간이 자초한 재난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해결의 작은 실마리 하나라도 찾을 수 있다. 스스로 문제를 야기하고도 그 책임을 다른 데서 찾거나 전가하려는 자세는 문제 해결은커녕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요원하게 한다. 수원수구(誰怨誰咎),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 이도 저도 어쩌지 못하는 불치의 상황이 오기 전에 이 모든 게 바로 ‘내 탓이오’라는 마음과 자세로 시대를 경고하는 징후에 크게 주목할 때다.

창궐하는 바이러스, 물을 피해 지붕으로 올라간 소들과 우리에 갇혀 수장된 동물들, 산사태와 홍수로 잃어버린 소중한 인명과 삶의 터전, 지구촌의 각종 재해…….

너나없이 우리는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말은 화자와 청자를 바꾸면 ‘오늘은 너, 내일은 나’와 같은 말이다. 죽음과 마찬가지로 재난 역시 모두에게 예외가 없다는 절박한 인식으로 기후위기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대추 한 알도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는 시인의 말처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결코 우연은 없다. 자연의 자연스러움과 인간의 인간다움이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상생과 공존의 유익함을 안겨주는 편안한 세상이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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