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특별기획-18살 청소년의 힘겨운 홀로서기
④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Ⅱ
“‘약자 프레임’은 그만, ‘자립’ 응원해 주세요”

보호아동은 만18세가 되면 자립정착금과 함께 사회로 나가야 한다. 매년 2천600여 명의 보호대상 아이들이 정부의 울타리 밖으로 떠나야 하는 실정이다.

이른 나이에 ‘자립’이라는 핑계로 사회로 등 떠밀린 보호종료아동들은 눈앞에 닥친 현실에 막막함을 느낄 뿐이다. 정부·지자체가 보호종료아동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자립정착금과 수당 등 여러 정책을 펼치면서 당장 맞닥뜨린 경제·주거 문제는 일부 해결하게 됐지만, 이들은 여전히 자립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경제 지원은 단기 현금 지원 위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장기적인 경제 자립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자립정착금 상향 평준화, 아동자립 수당 지급 및 지급 기간 연장 등 경제적 지원이 급격히 증가했지만 한시적인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보호대상 또는 보호종료 아동들은 금전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일자리 연계 정책 등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관심과 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이에 남도일보는 실제 보호종료아동과 보호종료대상 아동들이 자립에 있어 어떤 정책과 지원을 원하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보호종료를 앞둔 정다슬(가명)양

“색안경 낀 시선이 아닌 따뜻한 시선을…”

간호사를 꿈꾸는 고등학교 3학년 여고생입니다. 엄마는 4살 때, 아빠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시면서 3살 터울 언니와 조부모님 댁에서 함께 살고 있어요. 현재 간호 관련 학과 대학 진학을 목표로 수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 꿈은 간호사인데요, 지금까지 건강하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할머니를 비롯한 지인분께 받은 사랑을 어렵고 아픈 사람들에게 되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간호사’를 희망하고 있어요. EBS로 독학하며 수능을 준비하고 있지만, 많은 사랑을 꼭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보호아동으로 어려웠던 점

저에게 부모님의 자리는 비어있지만 할머니와 언니에게 충만한 사랑을 받으며, 남들 못지않게 어엿하게 성장했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그러나 ‘상처’는 존재하기 마련이죠.

중학교 시절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부모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남들과 다른 가정사를 고백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음날부터그 친구가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외면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사이가 멀어졌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도 ‘부모님이 안 계시다’라는 이유로 친구들이 무시하기도 했었지만, 15살 한창 사춘기였던 탓에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어요. 그 이후엔 누군가에게 가정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어요.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보호아동 및 보호종료 아동’에 대한 편견은 사회 곳곳, 깊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죠.

그래도 지금은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 지인들을 만난 덕분에 하나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어요.

▶자립을 앞두고 사회에 바라는 것은

보호 대상 및 보호종료아동도 충분히 사랑받고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흔히 ‘고아’로 불리는 우리는 사회로부터 언제나 색안경 낀 시선을 느껴야만 해요. 보호자, 즉 ‘부모’가 없다는 이유에서죠.

텔레비전만 켜면 자주 볼 수 있는 드라마에서 조차도 ‘고아’에 대한 비하 발언은 물론이고, 언제나 불우한 상황만 두드러져요. 이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한편으로 마음이 아파요.

안 그래도 사회적 인식이 좋은 않은 상황에서 미디어에서까지 불편한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불쌍한 사람’ ‘사랑받지 못한 사람’ 등 보호 대상 및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죠. 보호 대상 및 보호종료아동은 ‘약자 프레임’이 강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에요. 물론 보호자가 없다는 특수한 상황 탓에 정부나 지자체,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건 사실이지만, 그게 우리의 잘못은 아니잖아요.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요.

보호 대상 및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다양한 캠페인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라는 노랫말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주변으로부터 사랑받고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보호종료 8개월 차 노해솔씨

“‘자립’ 나이가 아닌 안정적인 기반 우선돼야”

저는 올해 초 대학 졸업을 기점으로 자립을 시작한 8개월 차 보호종료 아동이에요. 지금은 마케팅 관련 회사에 조기 취직해 마케팅 분야 전문 PD를 꿈꾸는 사회 초년생입니다. 영상에 관한 관심을 뒤늦게 발견해 대학 전공과는 다른 분야에 취직했는데요. 늦게 시작한 만큼 온라인 강의를 시청하고 공부하며 남들보다 더 큰 포부를 가지고 매일매일을 노력하고 있어요.

▶자립 후 가장 힘든 점은

저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직장을 구하게 된 ‘취업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에 가정위탁을 받으면서 친척들과 선생님의 도움으로 자립에 대한 필요한 정보를 차근차근 모아 상대적으로 원활하게 준비를 할 수 있었죠.

그런데도 ‘자립’에 있어서는 힘든 점이 많아요. 보호받던 울타리에서 한순간에 내밀리다 보니 그동안 준비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체감하는 현실은 그저 막막하기만 할 따름이에요.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작은 일부터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큰일까지 오롯이 혼자만이 해결해야 하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이 겪어야 했고, 그동안 자립을 준비하면서 받아 왔던 교육에서도 배우지 못했던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홀로 배워나가야 하죠.

경제적인 부분도 빼놓을 순 없어요. 현재 LH에서 지원하는 청년전세임대 주택에 살고 있지만, 자립하면서 월세부터 공과금, 병원비, 생필품 구매에 드는 비용 등 많은 지출을 혼자 감당해야 해요. 취업을 통해 경제적인 능력이 생겼다곤 하지만 이제 막 사회활동을 시작한 저에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어요.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마련하기 전까진 ‘돈’은 언제나 고민해야 할 어려움이죠.

▶자립 아동에게 가장 절실한 지원책

보호종료 시기가 ‘나이’가 아닌 ‘안정화된 자립’을 기준으로 정해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보호대상 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자립’을 해야만 해요. 대학에 진학한다거나 상황에 따라 보호가 연장되기도 하지만, 사회에 안정적으로 기반을 확립할 수 있을 때야 말로 진정한 자립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직장을 구해 경제적 활동을 시작했다고 해서 정서적으로나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확립한 것은 아니잖아요. 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 사회생활의 경험할 수 있는 ‘중간’ 단계가 절실해요. 초빙강사를 통해 듣는 주입식 교육보다 현실에서 직접 부딪히며 배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에요. 이처럼 홀로서기 하기 전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체험 기회가 필요해요. 여기에 ‘사회’라는 큰 세상과 홀로 맞서야 하는 이들을 위해 언제고 따뜻한 한마디를 건내 줄 수 있는 ‘정서적 지지기반’과 안정적인 기반 확립을 위한 자립기술을 지속해서 지원해 줄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길 기대합니다.
/정희윤 기자 star@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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