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섭 어썸오케스트라&콰이어 대표의 음악과 사회
애국가 논쟁과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남도일보는 9월부터 한달에 한 차례씩 ‘신일섭 대표의 음악과 사회’를 본면에 게재합니다. 어썸오케스트라&콰이어를 이끌고 있는 신 대표는 대학에서 인간과 사회를 연구하고 가르쳐 온 인문학자입니다. 신 대표는 ‘신일섭 대표의 음악과 사회’에서 인간 최고의 예술품 가운데 하나인 음악과 한 음악이 탄생한 배경, 당대의 사회상을 소개하면서 지금의 우리 사회를 고찰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 당부드립니다.
 

코로나19의 급박한 와중에도 애국가 논쟁이 불붙고 있다. 그 동안 애국가 가사부터 곡조에 이르기까지 연구자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논란이 있어왔다. 때 맞추어 지난 8월 15일 대통령도 참석한 광복 75주년 기념식장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은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의 친일문제나 친나치 행적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런 사람이 작곡한 애국가를 國歌로서 인정해야 겠느냐의 것이었다.

뼈아픈 지적이다. 일제로부터 해방 7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친일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지적되는 부끄러운 한국사회. 오늘날 한국사회의 갈등과 대립, 분열과 증오의 근원적인 문제는 해방 직후 친일청산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며 이것은 바로 민족분단의 문제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해방 후 제헌의회에서 구성된 ‘반민특위’가 폭력에 의해 해산되었고 이승만대통령의 친일세력 비호와 등용, 이어 세계 전쟁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1950년 6·25라는 한반도 동족간의 내전(internal war)은 민족모순을 극대화시켰다.

작금 애국가 논란도 그 극대화된 문제의 연속이다. 작곡가의 문제를 떠나서도 흘러간 옛 시조의 한 구절 같은 가사와 맥빠진 가락과 곡조는 뜨악한 애상곡을 듣고 있는 기분이다.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애국가를 듣다가 프랑스 國歌인 <라 마르세예즈>를 들어보자. 이 노래는 1792년 4월 프랑스 혁명 정부가 오스트리아에 선전 포고 한 날을 기념하여 현지에 주둔하고 있던 공병 대위가 출정 부대를 고무하기 위해 하룻밤에 작사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제목은 <라인군의 군가〉였는데, 마르세유 출신 의용군들이 즐겨 불렀기 때문에 〈라 마르세예즈〉로 통하게 되었다. 혈기 넘치고 위풍당당한 이 노래는 강렬한 효과를 발휘하여 혁명 기념행사에서 항상 불리게 되었다. 1795년 7월 14일 국민의회는 이 노래를 프랑스 國歌로 제정했으나 그 뒤 제2 왕정 복고 당시(1815)에는 혁명과 연관되었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1830년 7월 혁명 후에 공인되었지만 나폴레옹 3세에 의해 다시 금지되었고 1879년에야 다시 공식 國歌로 인정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6절로 부르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이 쓴 7절 가사가 덧붙여졌다. 공식행사에서는 1절과 6절만 부른다. 두 절은 다음과 같다.

“가자, 조국의 아들들이여/영광의 날은 왔나니/압제가 앞에 있지만/피의 깃발이 올려졌나니/피의 깃발은 올려졌나니/들판을 함께 가자/야만적인 적군을 무찌르자/적은 다가오고 있다./우리 아들, 우리 조국의 목을 치기 위해.

(후렴)시민이여! 무기를 들어라/무장하라 전사들이여/전진하라! 전진하라!/적의 더러운 피가/우리 들판을 흐를지니/조국의 신성한 수호신이/우리 복수심에 불타는 군대를 보살피고 지켜줄지니/자유, 사랑하는 자유의 신이여/적과 싸우자/적과 싸우자/우리 깃발 아래서, 승리의 노래가/힘차게 울려퍼질지니/쓰러져가는 적들도 그대의 승리와 영광을 보리라!/우리 군대와 시민의 승리를!”

근래 프랑스 내에서 일부 다소 과격한 표현의 國歌에 대한 반론도 제기되었지만 자유 평등 박애를 국가이념의 가치로 내세우는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즐겨 부르고 있다. 우리들의 기억에도 생생한 지난 2015년 파리 테러 발생 당시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의 8만 관중이 밖으로 긴급히 대피하면서 일제히 <라 마르세예즈>를 불렀고, 그 해 11월 17일 프랑스 의회에서는 올랑드 대통령의 대테러 연설 직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와 상하원 전 의원이 97년 만에 원내에서 처음으로 합창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國歌란 위기의 순간에 시민들에게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일체감과 단결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1794년 파리 혁명 당시 입성했던 마르세유 의용군이 불렀던 <라인군의 군가>는 이제 國歌 <라 마르세예즈>로 애창되면서 여전히 프랑스 국민의 힘과 자부심으로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처리과정에서 프랑스는 패망한 독일군에게 부역했던 100만명 가까운 조국 배신자들을 재판에 회부하고 11만 2천여 명을 사형에 처하였던 힘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어썸오케스트라&콰이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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