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표 전 백제고 교장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이제 세상의 버팀목은 무엇인가.

김용표(전 백제고 교장)

한 사회가 우왕좌왕할 때 존경받는 어른들의 한 마디가 큰 버팀목이 되는 시절이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 평생을 연구한 원로 학자의 심원한 식견이나, 시대적 소명 앞에 언제나 양심을 실천해온 정치지도자의 촌철 논평이나, 반목하는 사회에 화해와 용서를 권유하는 종교지도자의 따뜻한 말씀들이 있었다. 그래서 힘들어 하는 국민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위로와 힘이 되고 곧 무너질 것 같은 세상의 희망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이젠 우리에겐 이런 분들이 없다. 아니 존재할 수가 없다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실시간으로 먼지 하나까지 털어내는 정보화 세상에서는 그 누구에게서도 믿고 따를 권위와 명예가 남아 있을 수 없으니 존경이 자리 잡을 구석도 없다. 어쩔 수 없겠지 하면서도 왠지 슬프다. 종종 사람들은 착각을 한다. 우리가 마치 절대선과 절대악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줄 안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말했다. “우리는 순진무결함과 폭력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 덜 폭력적인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고 조금 덜 하자가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 완전함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진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어서 ‘원하는 진실’을 만들어 내는 세상에서 ‘존경받는 어른’이 완전무결하길 기대하는 것은 과도한 순진함이다.

사람들 간에 불신과 혐오가 커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철없는 막가파 어른들의 막무가내 몰상식에 넌더리를 내고, 나이 좀 든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의 싸가지 없음과 이기적 무책임에 인상을 찌푸린다.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을 가르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런 일들은 경륜으로나 지식으로나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물론 젊은 사람들이 역으로 나이든 사람들을 쉽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원래 잘 안 되는 일이다. 종교도 이미 이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 오히려 혐오를 더 부추기지나 않았으면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진보와 보수, 남과 여, 노장 세대와 청년 세대, 종교 있는 자와 종교 없는 자, 지역과 지역 간에 증오의 골은 갈수록 깊어만 가는데... 싸우고 미워함이 원래 우리 민족의 면면한 전통이라고 자학할 것인가. 아니면 이것도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쿨하게 넘어 갈 것인가.

그래도 아직 우리가 기댈 곳은 있다. 하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소한 미덕이다. 장사가 안 되도 가게 주변까지 청소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자영업자, 직장 내의 약자를 슬쩍 감싸주는 멋있는 상사, 알바 직원에게도 깍듯하게 존대해주는 손님, 해야 할 일을 언제나 묵묵히 해 내는 말단 공무원 등등.. 눈에 띄지 않지만 수많은 평범한 이들이 쉬어 보여도 쉽지 않은 ‘당연한 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계속하고 있다. 엄청난 개인적 희생이 아니어도 비범한 능력은 없어도 이웃으로서 작은 책임을 다하려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지 우리는 존경해야 한다. 그분들이 비록 평범해도 우리 사회의 새로운 ‘어른’이다. 그 분들마저 없어진다면 이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은 없어지는 것이다.

또 하나 기댈 곳은 연민의 보편성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이 있다. 타인의 고통에 마음이 저리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 그것을 ‘고통의 감수성’이라 한다. 타인의 불안과 피해를 해소해 줄 수는 없을지라도 걱정하고 염려해주는 마음일 것이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아니 그냥 사람이기만 하면 남들이 아파할 때, 힘들어 할 때 공감이라도 해야 한다.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려서야 되겠는가. 타인의 아픔은 아랑곳없이 자신의 믿음만이 오로지 중요하다면 뭐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의 믿음을 존중해야 하는가. 그것이 종교의 참뜻이라면 어처구니없게도 정말 ‘종교 없는 세상’이 기다려진다. 가게 문을 오늘 닫느냐 내일 닫아야 하느냐 참담한 고민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동네에 코로나 확진자가 혹시라도 있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에 날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부모들이 있다. 일하고 싶어도 이 혹심한 인위적 불경기에 사람을 뽑지 않아 허공만 바라보는 실직자들이 있다. 매일 매일이 비상 상황인 공무원과 의료인들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주변에 죄 짓지 말고 쓰레기 같은 말 퍼 날리지 말고 말없이 고생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해야 한다. ‘죄는 입으로 짓고, 상처는 귀로 얻는다’는 말이 있다. 코로나 재 확산과 관련한 뉴스를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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