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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YMCA, 시민과 함께 걸어 온 100년 ② ‘광주의 아버지’ 오방 최흥종빈민 구제 활동·교육·독립운동에 평생 헌신

빈민 구제 활동·교육·독립운동에 평생 헌신
② ‘광주의 아버지’ 오방 최흥종
나환자 돕는 포사이드 선교사에 큰 감명
나병 전문병원 ‘광주나병원’ 최초 설립, 국채보상·독립·사회운동 적극 참여

최흥종
오방 최흥종

광주 YMCA를 창간해 초대회장을 역임한 오방(五放) 최흥종 목사(1880~1966)는 평생을 빈민 구제 활동과 독립운동, 교육 운동 등에 헌신했다.

광주 최초의 목사인 그는 광주 불로동에서 출생, 5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랐다. 19세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젊은 시절 그는 ‘광주의 무쇠주먹’, ‘최망치’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뒷골목을 주름잡았다.

1904년 광주 양림동에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유진 벨과 오웬이 ‘광주양림리 교회’를 설립했고 최흥종은 그해 크리스마스 광주 최초의 예배에 참석하면서 기독교 입문을 결심하게 된다.

1909년 겨울 목포에서 광주로 오는 포사이드 선교사를 마중 나갔다가 나병에 걸려 추위에 떨고 있는 한 여성에게 자신의 외투를 벗어 입히고 나귀에 태우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과 감명을 받았다. 이 일을 계기로 최흥종은 날마다 선교사 촌에 나갔으며 나환자를 위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광주 양림동 선교사촌(제중원)에서 나환자를 보호하고 치료해 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병환자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몰려들었다. 최흥종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 1천여평을 기증했고, 1912년 광주시 효천면 봉선리에 한국 최초의 나병 전문병원인 ‘광주나병원’이 개원됐다. 이후 전국의 나환자들이 광주로 몰려오자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쳐 병원을 옮겼는데 그곳이 현재 여수 애양원이다.
 

1920년대 실무진
1920년대 실무진

최흥종은 1919년 밀명을 받고 광주에 온 김필수 선생을 만나 광주지역 3·1운동 거사의 총책을 맡아 상경했다가 체포돼 1년 4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1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광주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고 북문밖교회(현 중앙교회) 초대 목사로 부임했다. 1924년 남문밖교회(현 광주제일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고 광주 YMCA를 창간해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1929년엔 제주도 모슬포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다가 걸인들과 나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다시 광주로 올라왔다. 이후 목회활동을 하며 걸인들과 나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본 그는 ‘걸인, 나환자의 아버지’라 불렸다.

당시 나병환자들이 많아 국가의 관심과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 목사는 전국 나환자 집단수용시설과 치료시설이 필요하다고 조선총독부에 요구했다. 조선총독부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최 목사는 1932년 봄 광주에서 나환자 150여 명과 11일간 조선총독부까지 ‘구라대행진’을 시작했다. 행진 중 지방의 나환자와 걸인들이 참여해 서울에 도착했을 땐 5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결국 최 목사는 총독 사무실에서 우가키 총독과 면담을 갖고 소록도의 나병환자 수용시설을 대폭 확충할 것과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갱생의 길을 가도록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최흥종은 아호를 ‘오방’이라고 지었다. 오방은 다섯 가지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가족의 정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적으로 구속받지 않으며, 정치적으로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경제적으로 속박 받지 않으며, 종파를 초월해 정한 곳 없이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린다는 5가지 신조를 평생 지키며 살았다.
 

호혜원 아이들 사진
나주 음성나환자 자활촌 호혜원 아이들

그는 1947년부터 무등산 자락의 오방정(현 춘설헌)에서 의재 허백련과 함께 농촌지도자 양성하기 위해 삼애학원을 설립해 운영했다. 해방 이후 사회적으로 냉대 받던 자들을 위해 나주의 음성나환자 자활촌 호혜원(1955) 설립, 결핵환자들을 위해 지산동 골짜기의 송등원(1958)과 원효사 골짜기의 무등원(1962) 등을 설립했다. 무등원 안에 ‘복음당’이라는 토담집을 짓고 결핵환자들과 함께 살기도 했다.

김구 선생이 오방정에 찾아와 함께 정계로 나아가자고 권했지만 그는 영원한 자유인으로 남았다. 1966년 오방은 “이제 살만큼 살았다”고 선언하며 죽음을 향한 단식에 돌입했다. 그는 단식 95일 만인 5월 14일,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광주광역시와 남구청은 광주YMCA 창립 100주년을 맞아 오방 선생의 희생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오방 최흥종 기념관’을 양림동에 설립했다.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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