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7회)문중유구(門中有口)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허허! 저 비렁뱅이 거지가 자신의 운명의 길흉을 점치려 하는 것인가?’

이성계는 호기 어린 눈빛으로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바라보았다.

“맹인 도사님, 이놈 팔자가 어떻겠는가? 운명을 좀 봐주시오”

비렁뱅이가 말했다.

“아! 좋지요.”

그 말을 들은 소경점쟁이가 손님이 와서 앞에 앉은 것을 알고는 반질반질 기름때 묻고 닳아빠진 나무판에 여러 한자가 검은 글씨로 조각되어진 것을 비렁뱅이 앞으로 쓱 내밀었다.

“자! 여기 판에 새겨진 글자 중 맘에 드는 글자를 하나 골라보시오?”

소경점쟁이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아암! 좋지요. 맹인 도사님, 잘 맞추면 복채를 많이 주고, 틀리면 콧물도 없소!”

비렁뱅이가 글자를 고르려다 말고 속으로 감춘 무슨 수작이라도 있는 듯 슬그머니 말을 비틀었다.

“점을 보지도 않고 무슨 엄포가 먼저요. 세상사 점괘는 나오는 대로 말하는 법, 맞고 틀림은 하늘이 정하는 법, 보기 싫으면 가시오.”

소경점쟁이가 점잖게 말했다.

“에 에흠! 좋소이다!”

구멍 숭숭 뚫리고 덕지덕지 기운 누더기 옷을 걸쳐 입은 비렁뱅이가 아마도 복채가 없어서 시비를 걸고 점도 보지 않고 그냥 일어서서 가려나 했더니 글자를 고를 양으로 글자판을 한동안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글자를 고를 것인가? 이성계가 보아하니 어림잡아 백여 개의 한자들이 콩알처럼 오밀조밀 새겨진 나무판이었다.

“자! 맹인 도사님, 내 이 글자를 고르겠소!”

그 말을 들은 이성계는 비렁뱅이가 손가락을 짚어 고른 글자로 재빨리 눈을 돌렸다. 비렁뱅이가 고른 글자는 물을 문(問)자였다. 소경점쟁이가 비렁뱅이가 고른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어 어루만져보고는 대뜸 입을 열었다.

“으음!......... 문중유구(門中有口) 하니 분명 걸인지상(乞人之相)이라! 배고픈 객은 해 떨어지기 전에 어서 갈길 가시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새 옷에 고깃국 먹을 돈냥이라도 얻을 것이야!”

그 뜻인 즉 남의 집 문 앞에 와서 입을 벌리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하니 분명 비렁뱅이 거지상이라는 것이었다. 말을 마친 소경점쟁이는 그 자가 거지임을 알아보고 도무지 복채를 받을 수 없을 것을 알았던지 어서 가라며 고개를 가로로 휘저으며 외로 틀어 버렸다.

“에구! 재수 없어! 하나도 안 맞네! 하나도 안 맞어! 에이! 퉤!”

그 말을 들은 비렁뱅이는 복채를 줄 수 없는 제 처지를 변명하듯 상을 온통 찌푸리며 한마디 하고는 벌떡 일어나 침을 뱉고는 생쥐 쥐구멍 찾아 도망가듯 슬그머니 줄행랑을 놓는 것이었다. 앞을 못 보는 소경점쟁이가 복채를 안준다고 비렁뱅이를 쫓아가 잡을 수는 없었겠지만 아무래도 보는 눈도 있고 양심에 찔려 비렁뱅이는 황급히 그곳을 뜨는 것이었다.

‘으음! 저 소경점쟁이의 글 풀이가 제법 용하구나!’

그 것을 유심히 지켜본 이성계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는 도망가는 비렁뱅이 뒤를 슬그머니 쫓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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