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관광 남도 여행
강진 청주김씨(淸州金氏) 강진파 김우필종가

강진 청주김씨(淸州金氏) 강진파 김우필종가

<31>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KakaoTalk_20200916_185243791_02
금강사 전경. 김억추장군과 이순신장군의 동상

‘명량대첩 영웅’ 배출한 천년 무인 가문

왕건 도와 삼한통일한 청주 호족 집안
명궁 김억추 장군은 이순신의 동지
명량해전사에 빛나는 청주김씨 형제
장흥 강진서 번성한 후손 대종회 뭉쳐
나라지킨 공신들 행적 역사 조명 필요

전남 강진 수인산 자락에는 아름다운 천년고찰 금곡사가 있다. 신라 때 세운 사찰이지만 한 때 백제의 전통무예를 갈고 닦았던 무인 양성의 도량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전라도 방어의 구심점이었던 전라병영성은 이 지방 장정들이 지켰다. 강진 청주김씨 강진파 김우필종가를 찾아 수많은 왜적의 침입에도 의연히 향토를 지켜온 가문의 지혜와 내력을 알아본다.

◇고려 개국공신 김근겸 시조

청주김씨 대동보에 따르면 고려 개국 삼한공신으로 수도사 삼중대광을 역임한 김근겸(878~?)이 시조다. 신라 진골귀족의 후예로 서원경(현재의 청주지역) 호족이었던 김근겸은 왕건을 도와 궁예를 축출하고 고려의 삼한통일 대업을 이룬 고려 충신이다. 김근겸은 경기도 파주 탄현의 고려통일대전에 400여명의 고려 위인과 함께 위패가 모셔져 매년 대제에서 추모하고 있다.

2세 김희일(?~?)은 고려 광종 때인 962년 청주 호족으로 용두사지에 철당간(사찰 입구에 불화 그림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로서 철기둥 30칸 중 20칸이 보존됨)을 남겨, 현재 국보 제41호로 지정됐다. 8세 김광명은 정중부의 난 이후 은둔했으나 9세 김보(?~?)가 금오위대장군을 역임하고 청주 구봉산 아래 세거했다. 김보의 손자이며 시조11세인 김예(?~?)가 밀직부사를 역임했다. 김예의 손자인 13세 김린(1338~1410)은 안유의 문인으로 좌찬성을 역임하고, 장흥에 입향해 청주김씨 호남파의 세대를 이어가게 했다.

◇김린 장흥 입향, 김우필 강진 종가 열어

김린의 넷째아들 시조14세 김보생이 시강원 찬선을 지내고 강진에 입향했다. 절제사를 지낸 15세 김극중이 정국공신이고, 훈련첨정을 지낸 시조16세인 김령의 아들이 상장군을 역임하고 강진 군동에 종가를 연 김우필(1504~1568, 시조17세)이다. 그로부터 13대에 이르도록 전라병영성이 있는 강진 일원에서 번성한 가문을 이뤘다. 김우필의 아들이며 시조 18세 김충정(1527~1598)은 1555년 을묘왜변의 참상을 잊지않고, 네 아들들에게 무예와 역사를 가르쳤다. 임진-정유 왜란의 공신록에는 김억추, 김응추 형제와 사촌 김인복, 김대복, 김덕복까지 이름을 올려 가문을 빛냈다.

◇ 전라우수사 김억추, 가려진 명량의 영웅

김충정의 큰아들이며 시조 19세인 김억추(1548~1618)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명량해전에서 활약해 전쟁을 끝낸 명장이다. 김억추는 백제 전통무술이 전승되던 금곡사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바닷길을 익혔다. 순창군수 때 특명으로 임금을 호종하고, 평안도방어사가 됐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전라우수사에 제수됐다. 삼도수군 통제사 이순신과 협력하여 명량해전을 준비했고, 김억추 휘하의 4척 판옥선을 포함해 12척을 거북선으로 개조했다. 해전에서 한발 화살로 적장 마다시를 죽이고 적기를 빼앗아 승기를 잡고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존재집에서 전한다. 전후에는 재침략에 대비하다 강진에 물러나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마감했다. 훗날 정조는 그의 공적을 기려 금강사(전라남도기념물 제91호)를 건립했고, 이순신과 함께 배향됐다. 중건 때 김응추, 김대복이 함께 배향된다.

◇공동체에 헌신하는 가통 이어

청주김씨 대종회는 충의의 가통을 잇고 가문의 가르침을 전승하기 위해 종보를 발행하고 대동보를 발간했다. 김규현 청주김씨 대종회장은 “명량의 역사가 명확히 규명돼야 한다. 이순신을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자칫하면 한마음으로 목숨 바쳐 싸운 여러 영웅들을 지우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며 김억추 장군 현창사업과 학술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집성촌이 많은 강진에는 청주김씨 집안사람이 이장을 하는 마을이 14개가 될 정도로 번성하고 있고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가풍을 잇고 있다고 한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KakaoTalk_20200916_185243791_11
금곡사와 금곡재 입구. 절경을 예찬하는 시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KakaoTalk_20200916_185243791_09
금곡재. 종가를 연 김우필과 그 아들 김충정을 모시는 제실이다.
KakaoTalk_20200916_185243791_01
추원재. 금곡사 사우는 정조가 하사했고,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됐다가 1946년 지방 유림에서 중건했다.  
KakaoTalk_20200916_185243791_07

금곡사 전경. 김억추와 형제들이 무예를 배웠다는 금곡사는 신라 사찰이지만 백제 전통무예가 전승돼 조선시대 무인을 양성한 곳이다. 금곡사 옆에는 금곡제가 있다.중앙의 석탑이 보물 제829호 강진 금곡사 삼층석탑이다.

KakaoTalk_20200916_185243791_03
금강사. 정조 때 건립됐고, 김억추, 이순신, 김응추, 김대복이 배향됐다.
KakaoTalk_20200916_185243791_12
김억추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교지 사본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정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