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정신과 연구원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공감(共感)
김은성(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정신과 연구원)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최근에 지인으로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들었다. 로마 시대 사람들의 편지 문구에 애용되던 첫 인사말이라고 했다. 몇 번을 되뇌어 보고 한참을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따듯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짧은 이 한마디가 가지는 의미는 다양하다. ‘당신이 평안하면 나는 어떠해도 상관없이 안녕하다.’라는 의미가 될 수도,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면 나도 못 지내오.’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요즘처럼 마음 나누기 쉽지 않은 시기에 이 인사말은 상대의 상황에 따라 내 상태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같아 따뜻함이 느껴졌을지 모르겠다.

공감(共感) :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공감 능력은 ‘나는 당신의 상황을 알고, 당신의 기분을 이해 한다’처럼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기분을 같이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내가 만족하고 살 수만 있다면 남이야 어떻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요즘 우리의 삶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건 공감의 기회와 범위가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렇게 변해버린 우리의 생각은 사람들의 마음이 나빠서가 아니라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낼 여유가 점점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지금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똑같이 느끼는 상황의 위태로움이기에 함께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요즘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가는데 웅성거리는 느낌이 들어 주변을 살폈더니 지하철 보안관과 할머니 한 분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실랑이 중이었다. 자세히 상황을 살펴보니 마스크를 쓰지 않은 할머니와 이를 제지하기 위해 다음 역에서 하차를 요구하는 보안관 사이에서 뭔가 난처함이 보였다. 지하철 소음 사이로 들리는 ‘마스크를 사지 못했다’라고 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너무도 명확히 들렸다. 돈이 없어서 일수도, 마스크 판매하는 곳을 못 찾아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건 할머니는 낡은 손수건 하나를 두껍게 접어 입과 코를 연신 막고 계셨던 것만으로도 흔히 일부러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일명 ‘턱스크’를 써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려는 ‘무개념’ 미착용자가 아닌 다른 사연이 있는 할머니였다. 이를 알아챈 보안관도 다음 정류장 하차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난처함이 역력했다. 주변 사람들도 ‘이를 어쩌나...’하는 눈빛이 보였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느꼈다. 그런데 그때 같은 칸 끝쪽에 앉아 있던 여성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할머니 쪽으로 다가갔다. 모든 승객의 시선이 그 여성에 머물렀다. 그리고는 그 여성이 가방에서 뒤적이며 꺼낸 여분의 마스크가 할머니 손에 닿자 필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한결 편해짐을 느꼈다. 물론, 마스크를 받아든 할머니의 눈과 손이 너무도 고마워하고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같은 칸 안에 있었던 승객들이 할머니의 난처함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공감이란 큰 무언가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 상대의 감정을 느끼고 함께 해 주는 것만으로도 우린 더 많은 위안을 주고받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 이 일을 계기로 필자도 여분의 마스크를 챙겨 다니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 날 같은 칸에 있었던 승객 중 몇몇은 필자와 같은 생각으로 마스크를 챙기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기대도 해 본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살기 힘들어졌다고 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꼭 그럴필요는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는 나 자신과 내 주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함께 느끼고 이해하며 살아가야 함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여러분은 안녕하신가요? 여러분이 잘 지내신다면 저도 잘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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