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3화>최고의 사윗감 (3회) 염천국(炎天國)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내가 오늘 낮에 논에 가면서 생각해 보니까 산에 나무들도 다 해님이 길러 주고, 우리 논에 나락도, 우리 밭에 고추도 상추도 다 해님 덕에 파릇하니 자라나니 세상에 하늘의 해님만큼 힘이 세고 강한 사윗감이 어디 있겠어요!” “어이 옳거니! 인자 봉깨로 늙은 할망구가 그래도 쓸 모양이 많네 그랴! 허허허!” 두더지 영감은 이제야 비로소 제 딸의 사윗감을 찾았구나 하고 만면에 웃음을 베어 물며 맞장구를 쳤다. 

늘그막에 혼기가 찬 예쁜 딸 배필도 찾지 못하고 끙끙 앓다 덜컥 죽어 가려는 팔자는 아닌가하고 괜스레 겁이 나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윗감을 용케 찾아내다니 생각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쑥 내려간 듯 두더지 영감은 마음이 금세 부풀어 올랐다. ‘음! 그럼!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내 사위는 저 하늘의 해님 정도는 되어야지!’ 두더지 영감은 속으로 이렇게 되 뇌이며 이 세상의 밝은 낮을 온통 지배하고 하늘에 높이 떠서 만물을 길러주는 해님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자라고 확신하는 것이었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윗감을 알아냈으니 그 사윗감을 만나 설득해 딸의 배필로 정해 날짜를 잡아 결혼식을 올려주면 될 것이었다. 두더지 부부는 그 날 이후부터 해님을 만날 일에만 몰두했다. 세상의 어느 부모가 제 자식 잘되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겠는가. 세상에 없는 것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구해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인데 하물며 매일 보는 하늘의 해님쯤이야 딸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못 얻어주랴. 이런 심정으로 두더지 부부는 해님이 사는 곳을 수소문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님이 사는 곳을 수소문하기를 또 한달 드디어 덕룡산 골짜기에서 온통 새하얀 머리에 긴 수염을 휘날리는 어느 늙은 도인을 만나 동쪽으로 천리 길 동해 바닷가 염천국(炎天國)에 해님이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드디어 해님이 살고 있는 곳을 알아낸 두더지 부부는 집으로 돌아온 곧바로 열 아들을 불러모아놓고 일렀다. 

부모는 내일 아침에 중요한 일로 오랜 여행을 떠날 것이니 논과 밭을 열 아들이 열흘에 한 번씩 돌아가며 잘 돌보라고 말이다. 열 아들은 부모인 두더지 부부의 여행에 대하여 물었으나 두더지 부부는 그 일을 비밀에 부치고 천리 길을 떠날 채비를 챙겼다. 부러 그 일을 아들들에게 먼저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두더지 부부는 여행에 필요한 넉넉한 여비에 짐을 챙겨 등에 메고 다음날 해님이 산다는 염천국을 향하여 동으로 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위하여 이만큼의 노고야 힘든 일이 아니었다. 두더지 부부는 향기로운 봄꽃 만발한 늦봄의 들길을 지나 호젓한 산길을 걸어 때론 지나가는 우마차에 몸을 의지해 가기도 하고, 끼니때면 주막에 들어 국밥을 사먹기도 하고, 인심 좋은 동네에 들어가 한 끼 점심이나 저녁을 신세지기도 했다. 날이 저물면 여관에 들어 자기도 하고 또 길가 집에 들어 사정을 말하고 하룻밤 얹혀 자고 가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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