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 덮친 전남 들녘 수확철 ‘쭉정이’만 남았다
벼 일조량 부족으로 ‘작황 부진’
도복·흑수·백수 피해도 ‘심각’
나주배 등 과수 수확량 크게 줄고
낙과 피해로 해외시장 수출 차질

가을 수확철을 맞았지만 전남 농촌 들녘이 풍요로움은 온데간데 없고 농민들의 한숨과 탄식으로 물들고 있다. 사진은 최근 벼 도복(쓰러짐) 피해를 입은 담양군 금성면 논 모습.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가을 수확철 전남 농촌 들녘은 풍요로워진다. 누렇게 익은 벼의 가을걷이가 시작되고, 배·포도 등 제철 과일도 한창 단맛이 오른다.

조선시대는 입추 뒤 닷새 이상 비가 내릴 경우 이를 멎게 하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다는 기록이 전해질 만큼 왕성한 햇볕과 적당한 기온 차는 풍년 농사의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올해 하늘은 전남지역 농민들에게 유난히 가혹했다.

지난 여름 사상 최장 장마와 태풍이 이어지더니 수확을 코 앞에 두고 곳곳에 기록적인 폭우도 쏟아졌다.

이러한 이상기후 속에 웃자란 ‘꺽다리 벼’는 낱알을 맺더라도 ‘쭉정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 낱알이 영그는 과정에서 무게를 못 이겨 쓰러질 우려도 높다. 과일도 일조량 감소로 당도가 낮아지거나 작황이 나빠지는 등 큰 피해를 보고 있다.

◇황금 들녘 속살은

7일 현재 전남 곳곳에서 사상 최장 장마와 기록적인 폭우, 태풍을 모두 견뎌낸 벼들은 누렇게 고개를 숙이고 황금 들녘으로 익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삭을 꼼꼼히 살펴보면 알이 제대로 여물지 않은 부실한 벼가 많다.

궂은 날씨가 이어지면서 결실기에 충분해야 할 일조량이 부족해 속이 제대로 차지 못한 쭉정이들이 수두룩하다.

올여름 광주·전남에 지난 6~8월 총 42.3일간 995.3㎜가량의 비가 내렸고 일조량은 485.8시간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기간 588.8㎜ 가량의 비가 내린 것에 비해 강수량은 크게 늘었고 일조량은 601.2시간에 비해 115.4시간 정도 부족했다.

농촌진흥청이 지난달 16일 시행한 생육 조사 결과를 보면 포기당 이삭 수는 지난해나 평년보다 0.4∼0.7개 많은 21.1개였지만, ㎡당 벼알 수는 1천407∼1천365개 감소한 3만2천673개에서 그쳤다.

전남도 관계자는 “여름철 긴 장마와 집중호우 등의 영향으로 병해충 발생이 늘었고 8월 하순에서 9월 상순 사이 태풍이 연이어 오면서 도복(쓰러짐), 흑·백수(강풍으로 이삭이 검게 변색하거나 수정이 되지 않아 이삭이 하얗게 변하는 현상), 수발아(아직 베지 않은 곡식의 이삭에서 낟알이 싹이 트는 일)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잇단 태풍 내습 이후 전남지역 논에 벼알이 검게 또는 하얗게 마르는 흑수(黑穗)·백수(白穗) 피해도 심각하다.

지난달 14일 기준 도내 피해면적은 2만685㏊로 흑수 피해 1만8천387㏊, 백수 피해 2천80㏊로 집계됐다.

흑수(黑穗)는 강한 바람으로 벼알이 상처를 받아 태풍이 지난 7∼10일 후 이삭이 검거나 갈색으로 변하는 불량 상태를 이른다. 백수(白穗)는 태풍 내습 1주일 정도 경과 후 벼 이삭이 하얗게 마르는 현상이다.흑수·백수 피해는 태풍 내습 1주일 정도 후 드러나는데 수확량이 10~30%까지 감소 돼 피해 농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해 가을 태풍 때에도 도내 15개 시군의 논 약 4천600㏊에서 흑·백수 현상이 나타나 큰 피해를 줬다.

여기에 염해 피해도 218㏊나 발생해 비상이 걸렸다.

전남도는 흑·백수 피해가 7일 정도 늦게 나타나는 특성을 고려해 중앙부처에 피해조사 입력 기간을 연장해 줄 것을 건의했다.

또 시군 읍면동 사무소를 통해 태풍에 따른 농작물 피해 조사 접수가 신속히 이뤄지도록 조치했다.

농업재해대책법에 따른 복구지원대책도 수립해 피해 농가가 재해보상에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농협 전남지역본부와 나주시지부 직원 40여명은 지난 9월 제9호 태풍 마이삭으로 피해를 입은 나주지역 배재배 농가를 방문해 긴급 일손돕기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전남농협 제공

◇과수 농가도 ‘울상’

궂은 날씨는 과수 농가에도 큰 타격을 줬다.

태풍이 연이어 우리나라를 강타하고 지나가면서 1년 수확물을 한꺼번에 잃은 도내 과수 농가가 깊은 시름에 잠겼다. 평소 이맘때면 최상품을 골라내는 일손이 바쁠 때지만, 올해는 과수원 땅에 떨어진 과일만 쳐다보는 실정이다.

배 주산지인 나주에선 전체 1천942㏊ 중 최소 400여㏊(20%)는 낙과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했다.

저조한 작황에 열매도 많이 달리지 않았는데 비바람까지 몰아쳐 거의 다익은 배가 다 떨어진 것이다.

나주시 관계자는 “태풍 ‘바비’와 ‘마이삭’ 북상 때 상대적으로 피해가 컸는데 그나마 하이선은 동쪽으로 치우쳐 비바람 피해가 덜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고 말했다.

특히 나주지역 배 농가는 태풍에 앞서 저온 피해로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4월 초순 개화기에 들이닥친 한파로 저온과 서리, 냉해로 배 꽃눈과 잎이 말라 죽고 최악의 착과 불량으로 이어졌다.

조사 결과 1천792농가에서 모두 1천692㏊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농가 수로 지역 전체 과수농가(2천192농가)의 81.8%에 달했다.

신안군 압해면 수출단지 지역도 태풍 피해를 피해 가지 못했다. 수출단지 50 농가(55㏊) 중 80%(44㏊)에서 낙과 피해를 봤다. 농민들은 20년 만에 미국 수출이 어렵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고품질 명품 압해 배는 1999년부터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고 작년에는 약 300t을 수출, 배 생산농가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수출도 어렵고 국내에 판매할 물량조차 없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올해 농사는 사실상 포기한 상태이다.

압해배는 50농가에서 55㏊를 재배하고 있으며 지난해에 약 900t을 생산했다.

중·서부취재본부/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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