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 동화작가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아름다운 인생

이성자(동화작가)

이성자 동화작가
신문을 펼치는데 하얀 가운을 입은 여의사의 사진이 보였다. 환하게 웃는 모습, 포근하고 인자한 모습의 주인공은 죽는 날까지 흔들림 없이 자신의 본업을 하다가 떠난 사람이었다. 바로 지난달 30일, 향년 94세로 소천한 국내 최고령 현역 의사였던 매그너스 요양병원 한원주 원장님이시다. 내과 과장이신데, 병원 가족 모두가 그녀를 원장님이라 부른단다. 돈과 명예를 동시에 얻으며 잘 나가던 그녀가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된 후,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오직 환자만을 생각하는 ‘환자바보’로 검소하게 생을 마무리한다.

신문을 통해 마주하게 된 그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 가를 실천으로 보여주신 분이었다. 그녀가 눈을 감기 전 남기셨다는 말은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였단다. 마지막까지도 코로나19로 지칠 대로 지친 우리를 위로하는 메시지를 남기셨다니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이다. 문득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추석 연후 때 가수 나훈아가 코로나19로 우울한 국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장으로 마련된 공연이 있었다. 비대면으로 이루어진 공연이지만 전 국민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저는 아직까지 가수라는 직업 한가지로 평생을 살아 왔습니다. 신곡 하나 쓰려면 최소 6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신곡을 영감받기 위해 두문불출하거나 해외여행 나가 있으면 신비주의자라거나 온갖 루머가 난무합니다. 신비주의자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세월의 무게와 가수로서 무게도 무거운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정신적 가치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한 우물을 파기가 그리 녹록치 않은 요즈음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보여주는 말이었다. 가슴에 스며드는 노래와 소신 있는 말로 온 국민에게 위로와 공감을 선물한 나훈아, 그 또한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임에 틀림없다.

평소 알고 지내는 교장 선생님 한 분이 정년퇴임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활동보조인’ 교육을 신청했다. 무사히 교육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자마자 보건복지부에 등록하더니, 곧바로 현장에서 장애인들을 도와주는 일을 기쁘게 시작하였다. 며칠 전에는 자신이 돌봐줬던 장애인들과의 생활을 글로 써서 모아두었다가 소박한 동시집을 묶어 보내왔다. 장애인들과의 소소한 일상을 꾸밈없이 보여준 가슴 뭉클한 내용이었다. 아픈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봐준 한원주 의사, 노래로 대중의 가슴을 어루만져 준 가수 나훈아, 이들처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본업을 평생 지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교장선생님처럼 얼마든지 2모작 3모작의 삶으로도 나눔 실천이 가능한 일이라 여겨진다. 우리 같은 작가들의 경우는 감동을 안겨주는 최고의 작품을 쓰는 일일 것이다. 독자들이 작품 속 캐릭터의 삶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지혜를 얻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책 속에서 만났던 짧은 한 문장이 독자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기에….

코로나19의 엄청난 재앙 앞에서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어떤 인생이 아름답다고 잘라 말하기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것이 먹고 사는 일이건, 직업의 일이건, 타고난 능력의 일이건 간에 주어진 여건에서 소신을 갖고 일하는 모습, 그런 와중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배려가 깃든 삶이 바로 아름다운 인생 아닐까. 여러 인생 중 한원주 원장의 삶이 유난히 빛나 보이는 이유는 다름 아닌 94세의 많은 나이임에도 끝까지 한 우물을 파며, 자신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챙기고, 아픈 사람들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고 잡아 주었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으로 살다간 한원주 원장님.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떠난 현역으로서의 아름다운 활동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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