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표 전 고등학교 교장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얀테의 법칙

김용표(전 고등학교 교장)

K선생님은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보건교사이다. 코로나 발발 이전의 이야기다. K선생님이 관리하는 보건실은 늘 아침부터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아이들은 등교하자마자 보건실에 들러 어제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거나, 보건실 침상에서 부족한 잠을 때우고자 K선생님과 협상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정작 건강상의 이유로 보건실을 찾은 다른 아이들이 제 볼일을 보기 힘들 정도가 되자 학교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불만을 갖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담임교사들은 아프지도 않은 아이들이 보건실 침상에 누워 수업까지 불참한다며 불평을 했다. K보건교사 본인도 그 점을 고민하고 있었다. 학교장으로서 사실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어 보건실에 자주 오는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지 물었다. 대부분 학교생활 중에 다른 아이들과 갈등이 심하거나, 결석이 잦은 아이들이었다. 당연히 부모와 교사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아 보건실은 이 아이들에게 일종의 피난처였던 것이다. 그러나 K선생님은 이 아이들의 행실과 품행에 대해 나무라지 않으니 보건실을 애용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보건실을 계속 운영할 것을 K선생님에게 당부하였다. 학교에 그런 공간이 한 군데쯤은 있고 그런 선생님도 한분 계시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 것이었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려 할 시점에 보건실은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학교생활에 부적응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감정의 소통에 문제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잘났던 못났던 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거친 감정을 쓰다듬고 공감해 줄 사람이 한명쯤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학교생활에 부적응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의 상당수는 부모가 원인 제공자인 경우가 많다. ‘부모의 기대만큼 아이들은 망가진다.’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기대감으로 바라 볼 때 아이와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미숙한 부모일수록 아이들의 ‘평범함’을 큰 결함이라 생각하고 닦달하기 시작한다. 그와는 반대로, 예민한 청소년기에 있는 아이를 부모가 너무나 쉽게 포기함으로써 그 아이를 애정결핍의 맹수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부모의 인생관은 눈에 보이게든 눈에 보이지 않게든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에게 분명히 재생된다. 부적응학생들은 부모와 대화가 안 되거나 선생님이나 친구들과도 원만한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에 대한 미움을 키워가면서 부모를 닮아 간다. 물론 아이들의 모든 일탈을 환경 탓으로만 볼일은 아니다. 같은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고 조화롭게 사는 아이들이 더 많으니까.

중요한 것은 어른들은 아이를 존재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유럽에는 ‘얀테의 법칙’이라는 사회적 덕목이 있다. ‘보통사람의 법칙’이라고도 불린다. 얀테의 법칙은 자기 자신이 남들보다 특별하거나 지나치게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얀테는 노르웨이 작가인 악셀 산데모세가 1933년에 발표한 소설 <도망자, 그의 지난 발자취를 따라서 건너다>에 등장하는 가상의 덴마크 마을 이름으로, 이 마을은 ‘잘난 사람’이 대우받지 못하는 곳이다. 이 마을에는 10개조의 규칙이 있다.

1.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2. 당신이 남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3.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4.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자만하지 마라. 5.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6. 당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7. 당신이 모든 것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8.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마라. 9.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관심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10.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어떤가. 여태까지 우리들 대부분은 나 혹은 내 자식이 타인보다 더 특별하고 좋은 사람이고 더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지 않았는가. 학교와 가정은 그렇게 부추기며 교육하지 않았던가. 비범한 한명의 천재가 우리 사회를 먹여 살린다는 성공중심의 교육관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한 우리는 아귀다툼의 불공정 경쟁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얀테의 법칙처럼 ‘평범함’도 미덕으로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공감과 존중을 모르는 ‘특별한’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간들, 돈을 많이 번들 이웃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제부터라도 자칭 ‘교육전문가들’은 교육의 장기적 영향에 대해 검증도 고민도 없이 수월성 교육이니, 창의성 교육이니, 조기 진로교육이니 하면서 앵무새처럼 떠들 것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교육’에 관심을 가질 때이다. 코로나라는 이 변곡점의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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