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20) 울분
<제4화>기생 소백주 (20) 울분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예, 정승나리, 오늘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하직(下直) 인사차 왔습니다.”
이 말을 할 때 김선비는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한 자락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정승도 사람이라면 삼천 냥이나 되는 뇌물을 받아먹고 나 몰라라 하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삼 년이라는 긴 세월을 꼼짝하지 않고 이정승의 식객으로 사랑방에서 목을 빼고 기다렸으니 무슨 작은 벼슬자리라도 하나 챙겨 주겠다는 약속의 말이라도 있지 않을까 김선비는 내심 고대하였던 것이다.
“무 무어?......... 왜? 좀 더 있지 않고........“
이정승은 김선비의 눈치를 살피는 듯 잠시 바라보다가 말끝을 흐렸다.
“늙은 어머니를 뵙지 못한지가 그새 삼년이옵니다. 늙은 어머님이 몸도 편찬다고 하니 이제 고향에........”
“으음! 그래! 그럼, 잘 가시게나!”
이정승은 김선비가 더듬더듬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마치 가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그렇게 무 자르듯 단박에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
그 말을 들은 김선비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이정승을 쓱 올려다보았다.
뭐라! 돈 삼천 냥을 갖다 바치고 벼슬자리를 기다리며 삼년 동안이나 사랑방 식객 노릇을 했는데 ‘그럼, 잘 가시게나!’ 저자가 도대체 사람인가? 짐승인가? 김선비는 순간 머리에 피가 몰리고 으드득! 이가 갈려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손에 쥔 칼이라도 있다면 당장에 달려들어 저자의 목을 따고 싶은 극한 충동을 꾹 눌러 참으며 김선비는 이정승을 다시 쓱 올려다보았다.
김선비의 눈에 들어온 이정승의 얼굴은 막 커다란 개구리를 삼켜 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독사의 모습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탐욕스런 사악한 악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저런 자에게 인간적인 기대를 걸고 돈을 있는 데로 다 긁어다가 뇌물로 바쳤다니!’ 김선비는 순간적으로 스치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잠시 머뭇거렸다.
“저저....... 정승나리! 그 그간 신세 많이 졌습니다. 가가 강녕(康寧)하시기 바 바랍니다!”
김선비는 욱! 하고 끓어오르는 순간의 감정을 겨우 억누르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김선비의 눈가로 울컥 불꽃같은 울분(鬱憤)의 눈물이 스미어 올라 그것을 재빨리 삼켜 무느라 자신도 모르게 말을 순간적으로 더듬거렸던 것이다.
이게 다 권력과 지위만 보고 사람을 볼 줄 몰랐던 자신의 잘못이지 않은가! 부정한 뇌물도 사람다운 사람에게 들이 밀어야 약발이 나는 것이던가! 벼슬자리에만 눈이 멀어 사람을 볼 줄 몰랐던 자신의 탓이지 않는가!
김선비는 씁쓸히 이정승의 방을 나왔다. 샛노란 현기증이 일어 김선비는 순간 하마터면 방문 앞에 쿵하고 고꾸라져 기우뚱 넘어질 뻔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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