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인권

윤 원 태(국제기후환경센터 대표이사)

윤원태 국제기후환경센터 대표이사
인권이란 사람이면 누구나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이다. 즉 사람이 개인 또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인간답게 살 권리로, 가난한 사람, 부자, 장애인, 여자, 남자, 외국인 구별 없이 누구나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말한다.

인권은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1945년 6월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 채택된 유엔헌장에 인권이란 단어가 명시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시기의 인권은 일반적인 수사에 불과했다. 1948년 12월에 채택된 세계인권 선언문은 더 폭넓게 노동자의 단결권, 예술, 교육에 관한 권리 등 경제ㆍ사회ㆍ문화적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인권도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 동맹국들 사이 동·서 갈등상태가 지속하였던 냉전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소극적이었다. 이로부터 64년이 지난 2012년 5월에 채택된 광주인권 헌장에는 ‘지속 가능한 생태적 삶을 추구하며’라는 문구가 들어있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인권의 범위가 환경과 기후변화, 그리고 인간의 관계까지 확장된 것을 의미한다.

기후변화가 중요한 인권문제의 하나로 공식화된 것은 2008년 3월 28일 개최된 유엔인권위원회(UNHRC)에서였다. 이날 채택된 결의안은 유엔 47개국으로 구성된 인권위원회가 기후변화 문제를 처음으로 다룬 것으로서 기후변화에 취약한 작은 섬나라, 해안지역 및 가뭄과 홍수에 시달리는 지역 주민들의 인권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2016년 유엔인권위원회는 기후변화와 인권 결의안을 채택하고 ‘특히 기후변화로 피해를 본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기후변화는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도 하지만 어느 지역에서는 분쟁과 폭력의 원인이 되거나 성, 계층에 따라 그 영향력과 특성이 다르게 나타난다. 1967년~1972년에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이 확장되면서 초원지대인 사헬지역이 마르기 시작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인도양의 기후와 사헬 지역에 물을 공급하던 열대 몬순의 패턴이 변하여 강수가 사라진 것이다. 이로 인해 사헬 지역에선 60만여 명이 기아에 허덕이다 사망했고, 이전에는 없었던 ‘사막화(desertification)’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그 이후 1979년에 다시 한번 사하라 사막이 남쪽으로 확장되고, 이때 발생한 사막화는 훗날 예상치 못한 수단의 다르푸르 분쟁으로 비화한다.

인류의 발상지인 케냐와 동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가장 심하게 맞은 곳이다. 지구 온난화로 이 지역에 식수나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거의 사라졌다. 게다가 2011년에 발생한 동아프리카 큰 가뭄은 1천100만여 명에 달하는 난민을 발생시켰다. 기후변화로 고향을 등진 사람들은 물을 찾아 그리고 생계를 위해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수용 능력이 부족하고 생활수단을 충분히 제공할 수 없는 도시에서 이들이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슬럼가뿐이었다. 이렇게 하여 케냐 나이로비에서는 세계 3대 슬럼가 중의 하나인 키베라가 형성되었고, 여기의 주민들은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기후변화가 인간의 생존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국제법상 기후·환경 난민들은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현재 유엔난민기구가 인정하는 난민이란 난민협약에서 인정하고 있는 인종, 종교, 민족,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인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기후·환경 난민이란 기후변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사람들일 뿐이다. 국제사회에서 난민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떠돌며 그들이 겪고 있는 박해와 공포가 외면된 채, 기후·환경 난민의 문제는 점점 더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기후·환경 난민 문제가 드러난 1980년대 이후 40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기후·환경 난민이 국제사회에서 난민으로 공식화되지 않고 있다. 전쟁 난민은 전쟁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 그렇지만 기후·환경 난민은 기후변화로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돌아갈 집이 없다. 2020년 올해에도 중국 남부에서만 5,5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제는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이 기후변화에 취약하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도 머잖아 기후·환경 난민이 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되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헨리 슈(Henry Shue)는 그의 저서 기후정의(Climate Justice)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인 인권의 침해라고 했다. 기후변화는 지구생태계를 변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생존의 기반을 파괴하고 현재와 미래의 모두에게 해를 끼칠 것이다. 기후변화를 방치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계층과 미래세대에게 가하는 범죄 행위이자 심각한 인권 침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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