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세상입니까’

임성화(청년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살림 팀장)

“네가 좋다는 것은 다 해주고 싶었어”

나와 당신, 우리가 이런 마음을 먹었던 적이, 또 고백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무작정 주고 싶어지는 사람이, 줄 마음이 아직 내게는 남아있는것일까.

잠시 육아에 해방된 늦은 저녁, 우연히 보게 된 한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 엄마가 화자가 돼 아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육아일기라는 장치를 통해 순간을 기록하는 참신한 프로그램이다. 모델 출신 배우 배정남은 수년 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 시절 하숙집 주인이었던 차순남 할머니와 감격스럽게 재회했다. 그리고 작년 말 그가 수없이 ‘할매, 할매’라고 불렀을 차순남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최근 방송된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배정남이 어린 시절 하숙집 주인이었던 할머니를 모신 곳을 찾아뵈며, 힘들고, 치열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방송에 그려졌다.

부모님 이혼과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홀로 감당해야 했던 치열하고 혹독했던 시절, 초등학교3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하숙집 주인, 아니 엄마 그 이상 되어준 하숙집 “할매”의 재회 소감이자 고백은 바로 이 말이었다. “네가 좋다는 것은 다 해주고 싶었어”

차순남 할머니는 대낮에도 빛이 들지 않는 겨우 한사람 오를 수 있는 좁다란 다락방에서 혼자 울고있는 초등학생 어린아이 배정남에게 자신의 체온을 오롯이 나누어준 사람이었다. 단순히 하숙집 할머니가 아닌 어쩌면 누군가 기댈 수 있었던 마지막 ‘세상‘이었다.

널따란 운동장에 혼자 쓸쓸히 남겨졌을 운동회날에, 호들갑떨며 부쩍부쩍 시끄러웠을 졸업식날에, 친구들과 다툰 분통터지고 억울한 날에, 어둠뿐인 것 같아 막막해 부서지고, 부서지려 한 날, ‘할매’는 그렇게 그를 비추고 있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머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아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방문객’이라는 정현종 시인의 시구가 자꾸 머리 속을 맴돈다.

‘세상’ 변화의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분주하다.

그리고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그 속도에 부응하고자 몸부림을 치며 오늘을 살고 있다. 빠른 시간 안에 남들보다 변화에 중심에 경쟁하듯 먼저 도달하려 한다. 많은 정보나 지식을 섭렵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자 앞으로 질주한다.

흔히들 말하는 ‘인싸’(‘인사이더’라는 뜻으로,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적응하는 사람)가 되기 위해 SNS, 유행하는 것, 남들이 말하는 신조어, 인싸가 되는 아이템과 사업, 그럴듯한 겉모습을 소유하고 따라하려다 자신의 사명과 가치, 정체성마저 희미하거나 잃어버리곤 한다. 달리는 주자들은 많지만 멈춰서는 사람은 드물다.

브레이크 없는 속도는 위험하다. 변화에 대한 불안으로 우리는 일단 직진하고 있진 않은지, 목적지가 어디인지 우리는 생각하며 가고 있는 것일까.

변화는 물론 중요하다. 변해야 적응할 수 있고, 적응해야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적응을 잘 했다고 잘 살고있는 것은 아니다. 왜 변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향해 변화해야 하는지, 흔들리지 말고 진득하게 내가 비춰줘야 할 그 세상은 무엇인지 우리는 잘 가고 있는 것일까.

‘미운우리새끼’, 배정남과 할매를 보며 한번도 뵌 적 없는 차순남 할머니가 문득 고맙다. 너무 고맙다. 귀찮았을 법한 초등학교 3학년 꼬마 아이, 그 아이의 ‘따뜻한 세상’이 되어준 할매가.

우리는 과연 어떤 세상일까. 어떤 세상으로 기억될까?

당신은 어떤 세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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