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30)기생 소백주
<제4화>기생 소백주 (30) 기생 소백주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수원의 어느 관기의 딸로 태어난 소백주는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이 결정 지워져 버렸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기생의 길을 걸어야하는 운명, 소위 이 나라의 잘나가는 관리나 양반이라는 부류에게 술을 팔고 웃음을 팔고 몸을 팔아야 하는 운명, 어려부터 가야금 튕기는 법을 배우고, 춤을 배우고, 노래를 배우고, 글줄에 시문(詩文)을 익히면서 사내들의 눈과 마음을 홀려 그들의 환심을 사 돈을 얻어 살림을 꾸리고 또 어린 기생들을 길러 그들의 그늘아래서 꽃피우는 뒤울안의 향기롭고 아리따운 정원이어야 했다.

결국 사랑도 없고, 꿈도 없고 오직 그들을 위한 가무와 쾌락을 선사하고 돌아서면 허전한 눈물만 있어야했다. 소백주도 기생(妓生)이라는 그런 자신의 운명을 잘 알고 있었다. 제 어미가 갔던 길을 천형(天刑)으로 받아들이며 그 길속에서 아낌없이 피어 향기를 품어내는 어여쁜 꽃이어야 했다.

소백주는 바람 없는 맑은 봄밤 동산에 둥실 떠오르는 달덩이 같은 아름다운 새하얀 꽃이었다. 가야금을 튕기면서 노래를 부를라치면 사내들은 그 가락에 취해 느물거리는 나비가 되었다. 소백주가 버드나무가지처럼 휘늘어진 몸매로 춤을 출라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내들은 넋을 잃고 빠져 들어오는 한 마리 발정한 수캐에 불과했다.

아름다운 소백주 앞에서 한갓 불티같은 사내의 지위와 학식과 재력과 인격은 찰나에 무장해제 되어버렸고, 심지어 산중에서 수행깨나 했다는 수행승마저 삽시간에 그 마음이 봄볕에 얼음장처럼 찰나에 녹아 허물어져 내리는 것이었다.

“호호호호호!”

소백주는 당대의 뭇 사내들을 치마폭에 두루 감싸 안고 휘두르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만해졌다. 아니 오만해졌다기보다는 사내들의 하는 꼴이 그녀를 오만하게 만들고 마는 것이었다. 구중궁궐(九重宮闕) 임금님 빼고는 모든 사내란 사내를 다 경험한 소백주는 어느 날 인생의 허무가 물밀듯 가슴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한 여인으로 태어나 한 사내를 진정으로 사랑해 보지도 못하고 오직 그들의 눈요깃거리로 하룻밤 노리개로 전락해 살아온 삶이 그녀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술과 웃음과 몸을 팔아 수많은 재물을 챙기고 사내들의 품에 놀아나며 또한 그들을 희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참맛은 아니라는 회의(懷疑)가 불현듯 가슴 밑바닥에서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사랑받고 싶은 멋있는 사내는 하룻밤 노리개로나 생각하고 끌어안고 한번 이글거리는 숯불처럼 발갛게 달아오르면 그 길로 다시 오지 않았고, 속물들은 오로지 순간의 쾌락의 대상으로나 생각하니 그것이 그녀를 못 견디게 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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