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정신과 연구원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익숙하지 않은것
김은성(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정신과 연구원)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 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엄밀히 따지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개인에 따라, 상황에 따라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필자에겐 ‘헤어짐’이 그 중 하나이다. 이별이라고 하기엔 거창한 듯 보이지만 결국 ‘서로 갈리어 떨어짐’의 의미는 같다. 2020년 올 한해,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들과 헤어졌다. 잠시지만 친구와 헤어졌고 여행과 헤어졌다. 자주 가던 단골 식당과 헤어졌고 취미생활과도 멀어졌다.

하지만 이는 가까운 시일내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그 가능성을 알기에 작지만 간절한 희망을 품고 힘들지만 버텨내는 중이다. 이런 찰나의 상황이 주는 타격에 ‘코로나블루’라는 새로운 명칭의 증상을 호소하면서 말이다. 이 상황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증상도 감쪽같이 사라지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그 상처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는 외상을 입으면서 심한 감정적 스트레스를 경험하였을 때 나타나는 장애를 말한다. 다양한 교통수단으로 인한 사고와 산업장에서의 사고 및 폭동, 때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이 발생하였을 당시에 받은 충격에 의한 발병이다(최신정신의학, 민성길).

재난 경험자는 재난으로 인해 직접적인 충격이나 손상을 받은 1차 피해자, 1차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인척, 가까운 지인 등의 2차 피해자, 재난 상황에 구조ㆍ복구 작업에 참여한 재난 지원인력인 3차 피해자, 재난이 일어난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4차 피해자인 지역사회 그리고 매스컴이나 대중매체를 통하여 간접적인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는 전국민이 5차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직ㆍ간접적으로 겪는 여러 사건ㆍ사고에 반응하는 우리의 심리적 단계는 크게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 충격. 평정을 가장한 멍한 상태로 쉽게 쇼크단계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사고 사실을 부인,부정하는 2단계에 이른다. 객관적인 사고 사실과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관이 혼란을 일으키는 시기이다. 객관적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순간, 3단계인 분노 단계에 접어들어 가해자 혹은 부당한 운영, 사고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데 이는 정상적인 애도반응의 표현으로 본다. 그리고 극도의 분노 상황이 어느 순간에 우울 단계인 4단계를 거쳐 마지막엔 상황을 수용하는 5단계에 이른다.

국가적 재난 상황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사별, 이별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혼자서 극복하기 어렵다. 지역사회 또는 정부가 도와야 할 때도 있다. 무엇보다 친구나 가족이 돕도록 하는 경우도 많다. 원론적인 치료의 개념보다는 익숙해지지 않는 것을 함께 나누고 지지함으로써 안심시키고 이완하도록 돕는 것이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확진자 수에 민감한 우리에게 부쩍 가정 내 폭력, 아동 방임 및 학대 등의 받아들이기 힘든 소식들이 자주 들려온다. 지금은 이런 상황에 대한 탓과 분노를 남에게 표출하기 보다는 함께 어려운 이들끼리 상호 지지하고 이해해야 하는 시기이지 않을까싶다.

모두에게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 지지 않을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핑계로 우리의 2020년을 그냥 보내기엔 그 시간이 너무 괘씸하게 느껴진다. 헤어짐이란 늘 익숙하지 않지만, 얼마 남지 않은 올해와는 잘 헤어졌으면 좋겠다. 적어도 아쉬움이란 외상으로 여러분이 힘들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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