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목포대도서문화연구원 공동기획= 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이야기
<1> 프롤로그
위기 바람·변화 물결 속 섬 정체성 재확인 돼야
컨트롤 타워 역할 …한국섬진흥원 설립 ‘눈 앞’
‘섬 주민, 시혜 대상 아니다’라는 인식전환 중요
‘고립·단절’부정적 이미지 털고 변화 주체 세력 등장
‘연륙·연도사업’활발…힐링 최적지로 급부상
문화 인식 재평가 “‘같이’의 ‘가치’공유 절실

이제 섬은 ‘고립’이나 ‘단절’의 의미를 넘어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는 곳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국민들의 섬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전화돼야 할 시점이다. 전남에는 전국 65%가량의 섬이 존재하고 있어 희망의 아이콘으로 등장하고 있다. 사진은 항공에서 바라본 전남 조도 섬들의 모습. /위직량 기자

섬에 위기의 바람이 불어오고,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섬에 불어닥친 위기의 바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섬의 변화를 추동하는 물결 역시 어제 오늘의 일이 결코 아니다. 위기의 바람에 실려 조수처럼 밀려온 변화의 물결 역시 과거의 물결이 아니라 현재의 새로운 풍랑이다.

섬과 바다에 불어온 위기의 바람은 조수처럼 변화의 물결을 불러일으킨다. 위기의 바람은 섬 지식과 공동체의 위기로 연결되어 섬 전통지식과 공동체의 변화를 추동하였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섬과 해양환경의 변화가 섬의 전통 지식체계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환경오염과 자본의 투여가 섬사람들의 바다 이용방식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 이것이 섬과 바다에 관한 섬사람들의 문화 지식과 가치, 지혜에 대한 관심 제고가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근거이자 이유이다.

기존의 섬과 해양에 대한 전통적인 지식체계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나 범위, 정도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되었다. 환경오염과 재해, 재난의 수준과 파급력은 섬과 해양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업방식이나 섬과 해양 이용방식을 포함한 삶의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특히 최근 코로나19의 확산과 재확산에 따른 전염병 감염과 방역체계의 경계 역시 섬과 바다의 기존 이용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이러한 사회적·환경적 변화로 우리는 인간과 자연, 자연과 인간 사이의 상호 작용, 교류와 협력의 네트워크 구축 및 활용을 위한 섬의 정체성과 가치에 대해 다시 물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신안 섬을 연결하는 허브역할 ‘천사대교’모습.

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저출산과 고령화, 도시로의 이주로 인한 인구의 급격한 감소 및 그에 따른 섬의 공동화 현상 등은 매우 시급하면서도 중차대한 위기의 바람으로 인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섬 주민들의 저출산·고령화와 이주로 인한 인구 변화에 따른 문화 변동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섬 사회는 고기잡이에 기반을 둔 사회에서 바다경작의 사회로 전환되었다. 전 지구적으로 양식어업의 생산량이 포획의 생산량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되었다. 국내에서도 ‘잡는 어업’에서 ‘양식어업’을 강화하면서 공유와 공공의 어업 질서가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공유어장에 깊숙이 자리 잡은 경작의 관념은 섬 공동체에 새로운 활력 요소이자 자본의 질서 속에서 어민사회의 양극화를 초래하였다. 따라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어렵(漁獵)과 어경(漁耕)의 관계 속에서 섬과 바다의 문화와 문화 변동 과정의 특징과 의미 변화에 주목할 필요성이 급속히 증대하였다.

지금 섬과 바다는 위기의 바람과 변화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과 가치를 재확인하고 부흥시켜야 할 방향 전환의 경계 위에 서 있다. 최근 전남 서남권 출신 지역 국회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섬발전촉진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그에 따라 섬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중장기 섬 정책연구 및 수립 등을 추진할 것으로 예견되는 ‘한국섬진흥원’ 설립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개발 대상 도서의 지정, 사업계획 등을 심의하는 도서개발심의위원회에 전문민간위원을 위촉할 수 있도록 했고, 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중장기 섬 정책 수립을 위해서 한국섬진흥원의 설립 근거 규정을 마련했다.

한국섬진흥원 설립은 국내 섬 관련 지자체는 물론, 섬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항이었다. 국토의 최전선인 섬과 섬을 둘러싼 지역과 해역 관련 정책의 체계적인 수립 및 실행을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의 중요성은 물론 그로 인한 경제적 유발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학술용역 연구 결과 한국섬진흥원 설립에 따른 향후 5년간 생산유발효과는 407억 원, 부가가치효과는 274억 원, 취업 유발효과는 279명에 달하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경제성장 우선 정책의 영향으로 섬과 바다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어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중국은 해도연구센터, 일본은 이도센터 등 국가 섬 정책 전문 연구기관을 설립하여 섬을 단지 유휴지 개발이나 관광자원 개발의 측면이 아니라 국가 영토수호의 관점에서 섬 발전 및 진흥에 접근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섬 주민들에 대한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바탕으로 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제고시키고, 영토수호의 개념으로 섬 발전정책을 수립함으로써, 섬 주민들을 단순히 국가나 정부의 시혜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국민의 일부로 정당한 시민권의 소유자라는 주체와 주권자 권리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섬과 관련이 있는 유관 지자체들은 섬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정치경제적 의미, 그리고 그동안 추진해 온 섬 정책의 실행 가능성과 예상되는 경제 유발효과 등을 내세워 한국섬진흥원 유치의 당위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섬과 섬 사람들 관련 문화적 가치와 역사성, 경제유발효과의 실현 가능성, 정책적 중요성과 같은 섬과 바다를 둘러싼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과 논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섬 정체성 또는 섬의 문화적 가치와 의미는 고립성과 제한성, 독립성 등과 같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것 역시 쉽게 부인하긴 힘들다. 섬 하면 가장 먼저 떠올렸던 과거 이미지들은 절해고도, 유배지, 고독과 고립, 분리, 단절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섬은 주로 화산 활동이나 토양의 침식 작용으로 인해 형성되어 육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토지 생태계가 척박할 뿐만 아니라 바다로 인해 다른 지역과 분리되거나 고립되어 있다는 자연환경적, 생태적 조건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러한 고유하면서 독특한 생태환경적 조건 때문에 섬 사회는 오래전부터 섬과 해양문화에 관심을 기울여 온 연구자들의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여수 돌산대교 야경 모습.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 사회는 통상 천연자원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 규모도 일반적으로 작은 편이라고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자연환경적, 생태적 조건은 그들의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사실 생태환경적 요소가 인간 삶의 문화에 미친 영향과 인간 문화가 생태적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모두 중요하다. 인류의 문화와 생태 환경 사이의 상호 작용은 인간 문화의 생태적 측면을 사회문화적 맥락 내에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섬은 면적이 적고, 육지를 비롯한 외부 세계와의 관계도 제한적이다. 이런 지역에서는 문화가 생태적 조건에 견고하게 적응되어 문화의 변화가 적은 것이 일반적이다. 섬은 외부 사회와의 관계가 적어 문화 접변이나 교류가 적을 수밖에 없고, 외부의 영향이 있는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문화적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화 변동의 폭과 깊이 역시 제한적이고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인식되어왔다.

이런 이유로 섬 지역이 문화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또는 섬 문화를 육지부 문화의 옛 원형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문화 변동이 적다는 점에 주목하여 섬 지역의 문화 연구에서는 생태적 균형 개념이 강조되기도 했다. 생태적 적응을 강조하여 섬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게 되면 섬은 안정적인 사회라는 이념형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섬과 바다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이제는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하며, 재고되어야 한다. 섬과 바다에 대한 기존 또는 기성의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위기의 바람과 변화의 물결 속에서 경계 위에 선 섬과 섬사람들의 문화는 결코 안정적일 수 없다.

이제 섬의 문화는 급격히 그리고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통상적으로 섬에 나타나는 변화의 물결은 경제 개발, 식민화, 지역 활성화 등과 같이 국가 권력이나 정부 정책이 개입이 이루어질 때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섬 사회가 생태적 균형을 지향하고 있지만 국가 권력을 비롯한 외부의 힘이 섬 사회에 작용할 때 섬 사회의 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한 측면을 이루는 것이 개인의 전략이다. 개인은 외부 사회의 힘이 작용할 때 그것을 개인적인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한다. 외부의 힘은 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하나의 자원으로 인식된다. 주로 농민사회의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인 이른바, ‘한정된 재화의 이미지(image of limited good)’라는 개념이 섬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한정된 재화의 이미지’란 일반적으로 섬 사회는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따라서 남보다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숨기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더 많은 자원을 소유하는 것도 꺼리게 된다는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방식, 관념 등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이에 따르면, 특정 사회 내에서 자원은 균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평등의식이나 관념이 섬과 섬 주민들을 포함한 어민사회와 같은 소규모 사회의 중심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한정된 재화의 이미지’를 벗어나 개인의 전략이 섬의 위기를 극복하고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작용할 때, 섬 사회의 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섬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해진다.

이제 섬은 가고 싶은 섬, 머물고 싶은 섬, 아름답고 편안한 섬, 휴식과 힐링의 최적지, 전원적이면서도 여유롭고 한가로운 친환경적인 장소로 변모할 만반의 채비를 갖추었다.

섬과 육지가 이제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계되었다. 분리에서 연결로 변화한 것이다. 연륙·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예전에 “연륙·연도가 되면 섬은 더이상 섬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연륙·연도가 되더라도 “섬은 역시 섬이다”라는 새로운 인식이 만들어졌다. 연륙 연도가 되면 섬은 섬 자체로서 육지와 관계를 맺는다. 섬이 육지와 전혀 무관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서로 독립적이고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시공간적으로 서로 연관된 유기적 장소가 된다. 섬은 섬이라서 섬이 아니라 육지와 연계됨으로써 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섬은 육지와 내륙과 무관한 진공상태로 홀로 존재하거나 인식되거나 가치를 지닐 수 없다. 섬은 육지와 함께 “‘같이’의 가치”를 공유하고 지켜나갈 때 비로소 섬이 된다. 섬이 새롭게 재탄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3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반도국가이자 해양국가이고, 한국인들은 섬과 바다를 무대로 국가와 민족을 보존해 온 해양민족의 후예이다. 따라서 섬과 바다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되살리는 일은 매우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섬과 바다를 찾아가고 섬 주민들과 친숙하게 교류하고 협력하는 일은 섬과 바다의 문화를 새로 만들고 가꿔내는 일이다. 섬과 바다의 문화와 역사를 재발견하여 섬과 바다의 가치와 의미를 되살려내는 일이 매우 시급하면서도 중요한 근본 이유다. 섬과 바다는 그 자체로 한국의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이제 섬은 위기의 바람과 변화의 물결이라는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위기의 바람은 예고 없이 불어왔고, 변화의 물결은 조수처럼 밀려왔다. 이에 경계 위에 선 섬의 정체성과 가치에 대한 다각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을 통해, 섬과 바다의 위기와 변화를 올바로 진단하고 위기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보다 생산적이고 유의미한 학술적, 실천적 토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섬과 바다를 둘러싼 위기와 변화의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인문학적 통찰력을 제시하는 작업의 중요성과 섬 세계의 위기와 바다의 불확실성에 적응해 온 섬사람들의 삶과 그 지식체계가 새로운 위기에 처해있음을 공론화하는 작업, 그리고 연륙·연도와 기술발달에 따른 바닷길의 변화 속에서 섬의 경계와 네트워크가 새롭게 형성, 재형성되고 있음을 논의하는 작업이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머지않아 섬 부흥 시대가 목전에 도래할 것이다. 섬 부흥 시대를 선도할 현실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섬의 비전과 전략을 담은 섬의 정체성과 가치를 담아낼 정책 수립과 실행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글 = 홍석준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장·정리/중서부취재본부=박지훈 기자·사진 = 위직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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