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목포대도서문화연구원 공동기획 = 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이야기
<3 >‘어렵(漁獵)’에서 ‘어경(漁耕)’으로
서해·남해바다 온통 ‘양식장’으로 변모
일제 강점기 이후 수렵 채집 단계에서 ‘양식업’ 본격화
어촌도 농경사회처럼 ‘심고 기르는’ 경작 형태로 변화
광어·우럭·돔 ·연어 등 자연산 프리미엄 능가 품목

인류가 농경사회를 예측하지 못했듯이 어경사회 역시 완벽하게 전환될 것이라는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속에 어경시대는 도도한 물결처럼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진은 장흥 소등섬 앞 바닷가에서 어민들이 채취한 자연산 굴. 장흥/위직량 기자 jrwie@hanmail.net

생업기술의 발달과 변화는 문명의 전환으로 이어져왔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사회, 산업사회로의 전환은 삶의 토대가 되는 생업의 변화에 근거한다. 인류의 문명 전환에서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의 이행은 혁명적인 사건으로서 삶의 근간을 뒤흔드는 진화였다. 물론 이런 진화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고, 당대 인류가 그것을 획기적인 변화로 이해하지 못했을지라도 문명사의 흐름에서 커다란 전환이 이루어졌음은 부인할 수 없다.

수렵채집인은 자연환경이 제공하는 것만을 취할 뿐이지만 농경인은 식량 자급을 위해서 자연과 환경을 제어할 수 있다. 또한 농사는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환경을 통제하는 것이며, 농부는 열심히 일할수록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늘어난 식량은 인구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정치적으로 중앙집권화가 진행되고, 사회적으로 계층화가 일어났으며, 기술 혁신을 동반한 정주형 사회로 발전하게 된다.

문명의 진화과정과 관련하여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의 전환되는 시기를 첫 변곡점으로 삼는 게 일반적인데, 이는 육지적 사고의 단면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육지이고 문명사의 진행이 정착과 경작을 토대로 이루어졌지만, 해양의 문명사는 육지와 사뭇 다르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땅과 바다에서 모두 수렵과 포획을 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경작이 시작된 시기는 각각 다르며 동시적이지 않다. 육지에서 경작은 ‘심고 ·길러서 ·수확’하는 핵심적인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파종이나 심기, 기르기 등의 행위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경작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결국 육지와 해양은 생업기술의 차이로 인해 동등한 문명진화의 길을 걷지 못했다.

▲사람 손길 닿은 곳 ‘양식장’설치

근대에 들어서면서 해양 문명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양식어업이 시작되었는데, 불과 100여년이 지난 지금 서해와 남해의 바다는 온통 양식장으로 변모한 상태다. 드넓은 해안과 바다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를 살펴보면 온통 사람의 손길이 닿는 경작의 공간으로 변모해있음을 알 수 있다.

인류가 수렵에서 목축과 농경을 거쳐 산업시대마저 넘어서고 있는 시점이지만, 어업은 여전히 수렵 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다. 농업에서 핵심이 ‘심고 길러서 수확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인 반면, 어업은 기본적으로 심고 기르는 과정없이 수확하는 과정만 존재했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양식업이 도입되면서 본격적인 경작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즉, 어촌에서도 심고 기르는 과정이 도입되면서 예측 가능한 경작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양식어업이 확산되면서 어업에 기반을 둔 어렵(漁獵)에서 본격적인 어경(漁耕)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바다는 내륙의 문명이 수렵에서 목축과 농경으로 전환되듯이, 어렵(漁獵)에서 어경(漁耕)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 미약하던 양식어업 생산고는 불과 40~50년 사이에 포획 생산고와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예측하자면 2030년 이후로는 양식생산이 포획생산을 앞지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양식어업과 관련된 문화의 변화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식어업, 전 세계적 확장 추세

어경(漁耕)의 사회, 문화적 파급력은 농경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농경은 농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경은 어업의 시작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신석기 이후 전통사회에서는 농업이 국가의 근간산업으로서 90% 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에 농경문화는 오랜 시간동안 문화의 주류(主流)로 기능해왔다. 반면에 어경으로 본격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의 시대는 어업인구가 전체인구의 2% 정도에 그친다. 따라서 어경의 사회문화적 파급력은 농경에 비해 극히 제한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어경의 파급력이 제한적이라 하더라도 양식어업이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그 파급력은 갈수록 확대될 것이다. 또한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 전환되어 온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양식어업을 중심으로 한 어경의 확대는 필연일 것으로 예측된다. 농경이 처음 등장했을 때, 미래의 사회가 농경사회로 완벽하게 전환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들도 어획이 어경으로 완벽하게 전환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 전환되어 온 역사가 보여주듯, 어경의 시대는 도도한 물결처럼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실제 현실에서도 전통시대의 대표적인 해산물인 조기, 명태, 멸치보다 양식어종인 광어, 우럭, 돔, 연어의 수요가 많아지고 있고, 이들 양식어종은 ‘관리된 수산물’로서 자연산의 프리미엄을 넘어설 것이다.

글 /송기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교수

정리 /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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