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사랑, 이어달리기
박용수(고려인동행위원장·한신대 초빙교수·정치학 박사)

지난해 7월 교통사고를 당한 고려인 청년을 돕자는 문자가 떴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 김발레르(29)씨가 공사장으로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수술비가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식은 고려인 마을에서 발송하는 나눔방송 문자와 고려FM을 통해 순식간에 전파됐다. 그 결과 후원금 1천66만원이 모아졌고, 김씨는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김씨처럼 고려인 마을에서는 한 달에 2~3건씩 응급 중환자가 발생해 그때마다 수술비 모금 운동이 펼쳐진다. 주로 위독한 중환자와 큰 사고를 당한 고려인 동포들이 대상이다. 지난해 십시일반으로 모두 4천 여만원을 모아 고려인 동포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냈다.

감사한 것은 고려인 동포들의 후원 참여가 크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후원자 명단에는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이주 노동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한 고려인 동포는 이름 없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거액을 후원한다.

“맨손으로 광주에 들어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고려인 동포와 지역주민들 덕분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미 가족들과 함께 광주사람이 다 됐다.

후원자 명단에는 전에 도움을 받았던 남레오니드씨와 장인나씨 등의 이름도 올라있다. 병들었을 때 돌봐줬던 사랑의 손길에 대한 보답이다. 고려인 마을 교회 성도들도 나누고 섬기는 일에 늘 앞장이다.

또 다른 도움은 아프리카 이주 노동자들의 공단교회에서 온다.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이 고려인 마을의 든든한 후원자라는 사실은 놀랍다. 이들은 많지 않은 벌이에도 불구하고, 십일조와 헌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도움을 받은 자’에서 ‘도움을 주는 자’가 된 것이다. 이들은 지금 아시아 각국 공동체와 네트워킹하면서 광주에 뿌리를 잘 내리고 있다.

70년 전 한국전쟁의 폐허를 보면서 당시, 맥아더 장군은 “이 나라를 재건하는데 최소 100년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다행히 그의 비관적인 전망은 빗나갔다. 한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국민소득 76달러 최빈국에서 당당히 경제 대국에 합류했다. 원조를 받다가 원조를 주는 국가로 전환된 ‘최초의 국가’라는 기록도 세웠다.

오늘 고려인 마을에서도 ‘도움받은 사람들’이 ‘도움 제공자’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사랑의 은혜 갚기 행렬이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사람 중심의 평화공동체’ 그 소박한 꿈의 실체가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끝없는 사랑, 이어달리기’ 바로 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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