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62)연막(煙幕)

<제4화>기생 소백주 (62)연막(煙幕)

그림/이미애(삽화가)
그림/이미애(삽화가)
제사를 다 지낸 홍수개는 아버지 지방을 마루로 나가 불살라 태우고 가족들에게 음복(飮福)을 하라며 음식을 나누어 먹도록 했다. 그리고 홍수개 자신도 서너 잔 술을 들이켰다. 제사 음식을 마련하느라 며칠 동안 힘들었을 가족들이라 깊은 밤중에 남이 업어 가도 모를 만큼 잠에 곯아 떨어져버릴 한밤중 그 시간을 홍수개는 노리고 있었다.

적을 공략할 때 팔팔하게 힘이 넘치는 적을 상대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잘 알 것이었다. 강한 적이 스스로 힘이 팔려 쓰러져 넘어질 때 까지 쉴 틈을 주지 않고 괴롭히는 것, 그게 바로 강적을 쓰러뜨려 이기는 최상의 전략이었다.

더구나 어여쁜 아녀자를 불시에 품에 안고 맘껏 즐기려 한다면 주변을 쥐 죽은 듯이 모조리 잠재워 버려야 했다. 홍수개는 아버지 홍진사의 제삿날이 최고의 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하늘이 준 기회였다. 분주함 속에서 모조리 피곤에 절어 쓰러져 버리는 그 고요함을 틈타 옹기장수 아내마저 죽은 듯이 잠들어 버리는 그 틈을 노려 자신은 너무도 손쉽게 욕망을 채워 버리는 것이었다.

강한 적이 공격해오면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줄행랑을 쳐라. 공격하는 적이 지쳐 쉬면 쉬지 못하도록 거짓 공격을 가장하여 방해하라. 다시 적이 공격해오면 줄행랑을 쳐라. 그러다가 적이 지쳐 쉬거들랑 한꺼번에 공격하여 섬멸하라!

어려운 손자병법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 방면으로 닳고 닳아온 난봉꾼 홍수개는 연약한 여인 하나쯤 품에 넣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웠던 것이다. 홍수개에게 여인의 정절이나 의사 따위는 도무지 해당 밖의 사항이었다. 언제나 오직 자신의 욕망만 존재했고 그것이 항상 삶의 최우선이었다.

홍수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시각,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헤아리며 날카로운 신경 줄을 놓지 않은 주도면밀함을 나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제삿날이 아닌 평상시라면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을 것이기에 정씨 부인이나 자녀들이나 주변 사람 더더욱 저 토실토실한 먹잇감인 옹기장수 아내의 눈을 속여 방심시키기 어려웠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어지럽고 분주하고 피곤하다는 것이 곧 깊은 안개 속 연막(煙幕)이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 홍진사의 제사가 끝나고 모두 다 잠든 깊은 한밤중, 그 암흑의 시간 홍수개는 일어났다. 드디어 행동 개시의 시간이었다.

홍수개는 정씨 부인이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어두운 방을 슬그머니 빠져나와 집 뒤 옹기장수 아내가 잠들어 있을 오두막으로 향했다. 이미 그 집에서 사는 할머니에게는 밤에 제사 음식을 싸가지고 나가 마을 친척 집으로 가서 먹고 자고 오라고 은밀히 지시를 내렸던 것이었다. 물론 홍수개는 그 방의 문고리도 걸어 잠글 수 없도록 낮에 미리 용의주도하게 슬그머니 고장을 내 놓았던 것이다. 홍수개는 정말로 발정한 수캐가 되어 이 밤에 남의 집 담장 아래 뚫린 개구멍을 아무도 몰래 기어들어가 암캐와 달콤하게 흘레붙는 그런 수캐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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