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67) 묘책(妙策)
<제4화>기생 소백주 (67) 묘책(妙策)
그림/정경도(한국화가)

그림/정경도(한국화가)

정씨부인은 고매한 선비의 학풍(學風)이 있는 집안에서 인륜도덕과 부덕(婦德)을 익히고 실천하며 못된 남편 홍수개를 운명으로 여기고 인고(忍苦)의 날을 살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안 이상 그대로 가만 두어서는 절대로 아니 되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정씨부인은 홍수개가 옹기장수에게 산 너머 김씨 집으로 옹기 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보고는 홍수개 모르게 재빨리 집을 나와 마을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에서 황급히 따라잡아 옹기장수를 붙잡아 멈춰 세웠다.

“이 보시게! 나 좀 보시게!”

헐레벌떡 달려오며 부르는 정씨부인의 소리에 옹기장수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마님! 어쩐 일로 이리 급히 오셨나요?”

“다름이 아니라 방금 전 우리 집 대감이 자네가 가지고 간 편지가 다른 사람 것과 바뀌어서 보낸 대다가 보내야할 장소도 그곳이 아니라네. 그곳으로 가지 말고 저 산 아래 마을 정씨대감 집으로 가야 한다고 나를 이렇게 급히 보냈다네. 자네가 가지고 간 그 편지 일랑 나에게 주고 이 편지로 가져가 정씨대감에게 전하게. 어서 발길을 돌려 산 아래 정씨 마을로 가시게. 그리고 가거들랑 정씨대감이 시키는 대로 하시게! 잘 알았제!”

“예! 잘 알겠습니다. 마님!”

옹기장수가 정반대 길로 발길을 돌렸다. 정씨부인이 말한 정씨대감 집은 바로 정씨부인의 친정집이었고, 정씨대감은 친정 오빠였던 것이다, 정씨부인은 친정 오빠에게 옹기장수에게 옹기를 사서 보내니 잘 쓰라며 이 옹기장수를 삼일동안만 집에서 잔일을 시키며 꼭 붙잡아 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편지를 써서 홍수개의 편지대신 들려 보냈던 것이다. 홍수개의 편지를 회수하고 친정집으로 옹기장수를 보낸 정씨부인의 다음 일은 바로 남편 홍수개가 단침을 삼키며 야수처럼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옹기장수 아내를 지켜내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씨부인은 망연히 겨울 찬바람 불어오는 먼 하늘을 응시하며 묘책(妙策)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하늘은 인간에게 절대로 전부를 주지 않는 법이었다. 전부 가진 자는 언젠가는 망해 전부 잃게 되는 법이었다. 정씨부인에게 아름다운 미모를 주지 않았다면 삶의 지혜를 하늘은 주지 않았겠는가! 하늘이 여인에게 미모를 주었다면 동시에 그 미인에게는 어리석음을 주지 않았겠는가! 그리하여 고래로부터 현자(賢者)는 미인(美人)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지 않은가! 가인박명(佳人薄命)! 아름다운 장미는 숙명(宿命)처럼 무시무시한 날카로운 가시를 달고 있지 않은가! 옹기장수 아내가 젊고 빼어나게 예쁘지만 않았다면 홍수개는 절대로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쁜 꽃에는 날 파리에 진드기가 먼저 들끓는 것처럼 내 집의 숨겨둔 보물은 도둑이 먼저 알아보고, 예쁜 딸은 거개가 난잡한 놈 차지가 되는 법이지 않은가! 정씨부인은 그런 생각을 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지금 정씨부인은 신세타령이나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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