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찾기 놀이
김은성(전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정신과 연구원)

요즘 필자에겐 새로운 습관 하나가 생겼다. 출퇴근길 지하철 안, 혹은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인터넷 사이트나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일명 “뿜”하고, “펀(fun)”한 내용을 찾아보는 것이다. 워낙에 흔들리는 차 안에서 시각적 자극을 좇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늘 라디오나 음악을 듣는 정도였는데 어느 날 지하철에 마주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무표정함을 발견하곤 남들이 보는 내 모습도 조금은 차가워 보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시작한 일이다. 물론 마스크로 가려진 상태라 ‘무표정’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겠지만 적어도 필자의 눈에 보이는 그들의 눈은 특별한 생각과 감정이 없는 것 같았다.

희노애락오욕(喜怒哀樂惡慾).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많은 감정들을 느끼지 못해 집안 냉장고에 한자를 붙여놓고 상황에 따른 감정을 배우는 아이가 있다. 심지어는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의 감정 또한 이 아이에겐 없다.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가 선천적으로 작게 태어나 이로 인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어린 주인공 ‘윤재’의 이야기를 다룬 ‘아몬드’(손원평, 창비)의 이야기이다.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 ; 감정을 인식하거나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보이는 상태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두산백과). 감정표현불능증의 주요 증상으로는 ① 감정을 정의내리고 정서적 각성으로 인한 신체적 반응을 구분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 ② 타인에게 감정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 ③ 공상의 결핍과 같은 제한된 심상 처리 과정 등의 특징 있다.

우리 대부분은 적당한 크기의 아몬드(편도체)를 가지고 태어나 상황에 맞는 적절한 감정과 반응을 보여왔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지속 되면서 점점 희망 대신 지쳐 나가떨어지는 ‘소진(burn out)’상태에 이르다 보니 감정 또한 메말라간다. 크게 기쁘고 설레는 일도 없지만 소소한 기쁨에서도 마음껏 반응하지 못하고 처음엔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었던 이 상황도 이제는 그럴 기운조차 없어지는 것이다. 일시적 감정표현불능증 상태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이 앞선다. 필자 또한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어본 것이 언제쯤인지 가물하다.

주변에 웃을 일이 없으면 내가 찾아 나서야겠다는 결심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삐뚤빼뚤 적은 어린아이의 손글씨, 눈 오는 날 아파트 공터 앞의 눈사람, 귀여운 강아지의 애교.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겪었던 재미난 일들을 공유하는 많은 사람들 덕분에 지하철 한 가운데에 앉아 있는 필자는 어느새 혼자 흐뭇하게 미소를 짓거나 키득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혹여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노에 차고, 슬퍼서 우는 것보다는 웃는 모습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웃음은 전염성이 있어 남이 숨이 넘어가도록 웃는 걸 보면 왜 웃는지도 모르는데 따라 웃게 되는 경향이 있다.

여러분은 어느 순간에 참았던 웃음이 빵 터지고 미소가 지어지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각자의 웃음 포인트는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웃음 포인트를 찾는 것부터가 ‘재미 찾기 놀이’의 첫 단계이다. 평소 좋아하던 음악을 듣는 것, 영화를 보는 것, 책을 읽는 것 외에도 연예인 사진을 보는 것, 웃긴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등등 ‘나만의 재미’ 찾기 놀이를 시작 해 보는 것이다.

필자가 학생들과의 상담을 하면서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는 ‘스트레스를 푸는 자기만의 방법이 무엇인지’이다. 의외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과 그 정도는 쉽게 파악하고 있으면서 그 후에 해소 방법은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히 ‘재미’를 찾는 것이 막연하고 어렵다면, 내가 무엇을 할 때 마음이 평안하고, 기쁘고, 또는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를 생각해보자. 의외로 자기만의 노하우를 못 찾고 헤매는 사람도 많다. 그동안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 안에서 뒤처지지 않고 따라가기에 급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감정에 집중해 그 감정이 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볼 때이다. 그리고 찾아보자. 나만의 ‘재미’가 무엇인지. 적어도 우리는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움이 어떤 감정이고 그럴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잘 아는 건강한 감정표현능력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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