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75) 천륜전략(天倫戰略)

<제4화>기생 소백주 (75) 천륜전략(天倫戰略)

그림/정경도(한국화가)
그림/정경도(한국화가)
아들 홍안기를 투입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투입했다가는 아무리 비밀이라고 해도 남편 홍수개의 그 사악한 행위가 언젠가는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었고, 또한 분노에 치받친 남편 홍수개가 그에게 무슨 간악한 짓을 할지도 몰랐다.

또 그 행위가 실패를 했다 해도 남편 홍수개가 옹기장수 아내를 향한 그 불 끓는 욕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정씨부인은 미루어 짐작하고 판단을 했기 때문에 절대로 텅 빈 방으로 두어서는 아니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수세(守勢)만이 능사가 아니라 바로 적극적인 공세(攻勢)를 취해야 목적하는 바를 극대화 시킬 수 있다고 정씨부인은 판단했던 것이다. 승리를 장담하고 마음 놓고 공격해 오는 자의 허(虛)를 단박에 찔러 찰나에 역공하여 적을 섬멸해 버리는 전략을 정씨부인은 대담하게 구사해야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들 홍안기를 그 방에 있게 했을까? 아들 홍안기의 옷에 향기가 나도록 여인네의 분을 바르게 한 것은 홍수개가 옹기장수 아내임을 착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절대로 상대가 바뀌었다고 의심을 하지 않고 덤볐다가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한 순간 그 간극의 차이 즉 심리적 충격을 노렸던 것이다. 사람이 예상이 빗나가면 순간 당황하게 되고 멈칫거리게 되는데 그 사이 아들 홍안기가 할아버지 홍진사의 분장을 하고 벌떡 일어나면 과연 그것을 본 홍수개는 어떠할까? 제갈공명이 사마중달을 전쟁으로 유인하기 위해 여자의 옷을 선물로 보냈던 것처럼 그런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물론 사마중달은 그것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예상대로 적중하지 못하고 아들 홍안기가 아버지 홍수개에게 붙잡히는 꼴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씨부인은 그것도 예상해 두었다. 치졸하고 흉악한 방법으로 가난하고 연약한 남의 아내를 훔치려한 아버지 홍수개가 자기 아들 홍안기에게 그것을 현장에서 들켰다면 과연 어떠할까? 그리고 아들 홍안기가 자기 할아버지 홍진사의 모습을 흉내 내고 어둠 속에 서서 ‘아버지! 이러시면 절대로 아니 되옵니다! 오늘이 할아버지 제삿날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과연 어떠할까? 참으로 극적인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정씨부인은 못된 아버지의 일에 그 아들을 약으로 쓰는 극약처방을 치밀하게 연출해 냈던 것이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정씨부인이 마음 놓고 믿을 수 있는 자는 오직 아들 홍안기 외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이른바 천륜전략(天倫戰略)이었다. 그 아들 앞에서 그 말을 들은 홍수개는 과연 어떠한 심정이 될까? 그 약도 약발이 들지 않는다면 아마도 홍수개는 죽거나 말거나 아무래도 좋을 더 이상 남편도 아버지도 아닌 하늘이 버린 사람일 것이었다.

정씨부인은 옹기장수 부부를 구해내고 더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한 야수 같은 남편 홍수개로 부터 아이들을 보호해 잘 기르기 위해서라도 그날 밤 결과가 좋지 않다면 부부의 연을 끓고 헤어질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있어서 해악만 되는 자는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았다. 아니다. 상대가 치기 전에 먼저 쳐야했다. 한 여인의 인생과 한 가정의 명운을 건 정씨부인의 마지막 전략! 아마도 이러한 전략은 천하사와 인간사의 모든 일에 달통한 현자(賢者)만이 구가할 수 있는 배수진을 친 막다른 전략이지 않겠는가! 명운(命運)이 다해가는 제갈공명이 상방곡(上方谷)으로 사마중달을 유인해 섬멸할 마지막 전투의 전략처럼 말이다. 인생사에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생사(生死)를 건 중대한 결단을 내려할 때가 누구에게나 간혹 있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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