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나무가 주 활동 무대 … 도망가지 않는 나방 ‘신기’
잎 두 장 붙인 공간 속에서 한꺼번에 무리짓는 습성
잎맥은 남기고 오로지 잎맥살만 왕성하게 치우는 모습 특이
먹이가 없으면 흩어지고 있으면 모이는 생존 본능 구사

남도일보 특별기획 = 이정학의 ‘신비한 자연속으로’ <23> 왕인갈고리나방

 

사진-1 박쥐나무(2019년 2월 16일, 대원사)
사진-2 박쥐나무 (2015년 6월 6일, 추월산)
사진-3 왕인갈고리나방애벌레(2013년 8월 26일, 증심사)
사진-4 왕인갈고리나방애벌레(2016년 7월9일, 동악산)
사진-5 왕인갈고리나방(2014년 5월 18일, 추월산)

봄이 무르익고 숲이 무성해지는 6월에 접어들면 숲속 친구들의 움직임도 더욱 활발해진다. 봄꽃이 지고, 많은 나무들이 부지런히 꽃을 피운다. 그중 특히 눈길이 가는 멋진 꽃이 있다.

옛날 여인네의 노리개를 닮은, 하얀 꽃잎은 위로 말려있고 노오란 꽃술이 아래로 길게 늘어져 멋스러움을 더하는 박쥐나무의 꽃이다. 꽃 모양도 독특하여 손가락 두 마디 길이나 됨직한 가늘고 기다란 연노랑의 꽃잎이 뒤로 젖혀지면서 속의 노랑 꽃술을 다소곳이 내밀고 있다. 잎사귀 위로 꽃이 솟아 오르는 법이 없이 모두 아래를 향해 핀다. 이런 모습은 조선시대의 가련한 여인이 얼굴을 가리고 잠깐 외출을 하려는 모습과 닮아 있다.

박쥐나무는 숲속의 커다란 나무 밑에서 조용히 살아간다. 그가 살아가는 방식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주위의 키다리 나무들과 햇빛을 받기위한 무한경쟁에 무모하게 뛰어들지 않는다. 대신 숲 속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 서로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높다랗게 하늘로 치솟아서 잔뜩 잎을 펼쳐놓는 비정한 나무에게 기대하지 못하기 때문에 살아남는데 필요한 구조조정을 했다.

먼저 키를 줄이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작고 촘촘한 잎을 없애고 큰 나무 사이로 짧은 시간에 들어오는 햇빛을 가장 많이 받을수 있게 설계한 것이다. 박쥐의 날개와 흡사한, 끝이 3~5개로 살짝 갈라진 커다란 잎은 나무와 나무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라도 잠시 비쳐지면 이리저리 뻗은 잎맥은 마치 펼쳐진 박쥐날개에서 실핏줄을 보는 듯하다.

박쥐나무의 또 하나의 특징은 겨울눈이 잎자루에 쌓여 그 안에서 보호받는다는 것이다. 잎자루가 떨어진 자리에 겨울눈이 있다(葉柄內芽). 쪽동백, 황벽나무, 양버즘나무가 그렇다.

박쥐나무잎을 먹는 사는 애벌레가 있다. 6월부터 박쥐나무에서 볼수 있는 녀석은 왕인갈고리나방애벌레다. 잎 2장을 붙이고 그 속에서 여러 마리가 모여 사는데, 먹이가 없으면 흩어진다. 어린 유충은 잎맥을 남기고 잎살만 먹는다. 박쥐나무는 잎맥만 지저분하게 남고 이리 저리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녀석들을 쉽게 볼수 있다.

우리 지역에서는 무등산 편백숲에 가면 많은 박쥐나무들과 만날 수 있는데 어렵지않게 애벌레와 어른벌레를 관찰할수 있다. 잎을 붙이고 번데기가 되는데 우화시기는 7월, 이듬해 4월이다. 어른벌레는 낮에 나뭇잎위에서 자주 목격되는데 거의 움직임이 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나방들은 예민하여 접근하기도 어려운데 녀석들은 손으로 건드려도 죽은 듯 가만히 있다.

2016년 7월 9일, 곡성 동악산으로의 숲기행에서 녀석들을 만났다. 큰 나무밑에서 군데군데 자라고 있는 박쥐나무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까만 몸통, 눈에 확 띄는 흰색과 노랑색 무늬를 가진 왕인갈고리나방애벌레들.

한 나무의 잎을 다 먹어 치웠으니 부지런히 다른 나무로 옮겨가야 한다. 먹이가 충분하면 같이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흩어져야 산다. 애벌레 시절에 최대한 많이 먹어야 튼실한 번데기가 되고 우화하여 짝짓기하고 많은 알을 낳아 종을 유지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인 것이다. 잎을 다 빼앗긴 나무는 그대로 죽을까? 일부는 죽겠지만 녀석들이 번데기가 될 때 다시 잎을 내어 조금씩 성장하며 또 꽃을 피운다. 이것이 자연이다. 무너질 듯 하면서도 다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인간들의 욕심으로 자연생태계가 말이 아니다. 코로나19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답은 분명하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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