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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86) 사라진 집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86) 사라진 집
<제4화>기생 소백주 (86) 사라진 집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김선비는 마을길을 내려가면서 멀리 개울 건너 있을 자신의 집을 눈여겨보는 것이었다. 봄이면 분홍빛 살구꽃 피고, 여름이면 감나무 그늘 시원한 아래서 글을 읽던 집, 가을이면 들에서 집안일 하는 일꾼들이 벼를 추수해와 볏가리를 높게 쌓아놓고 벼를 훑어냈다. 그 전답을 벼슬 사러 팔지 않고 잘 보존했더라면 배불리 먹고 살았을 텐데 모조리 팔아 치워 버렸으니 그 풍요로운 가을도 없었을 것이었다.

그런 가을이 없어졌으니 아무래도 하얀 눈 펑펑 내리는 겨울날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나누던 식구들의 다정한 옛이야기도 사라져버렸을 것이고, 또 어린 아들놈들의 또랑또랑한 글 읽는 소리도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가지고 있던 모든 귀중한 것들을 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의 깊은 속을 깨닫게 된다고 하더니 문득 김선비 자신이 그런 꼴인 듯싶었다.

헌신적이고 자애로운 어머니를 가졌었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아내를 가졌었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들딸들을 가졌었고, 또 식구들이 배불리 먹을 논과 밭을 가졌었고, 그 일을 해줄 일꾼들을 가졌는데 그 가진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이 썩어문드러진 야비하고 험난한 세상에 벼슬을 사서 가지려다가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으니 참으로 자신이 어리석은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것을 깨우쳐 알았다고 하나 무슨 의미가 있으랴! 제발 식구들이 건강하게만 살아있다면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헛생각일랑 내버리고 배불리 먹고 살 일들을 찾아해야지 하는 심정으로 김선비는 자신의 집이 있는 곳에 눈을 박고 그곳을 향해 바삐 말을 몰았다.

조그마한 초가집들이 있는 마을 어귀를 돌아 이윽고 김선비는 자신의 집이 훤히 내다보이는 곳으로 향해 갔다. 이 골목만 돌아서면 거기 삼백년을 버티고 선 낯익은 김씨 종가 낡은 대문과 허름한 고옥(古屋)이 보일 것이었다. 그런데 기대하며 골목을 돌아서는 김선비의 눈앞에 있어야할 자신의 집은 그곳에 없었다.

“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 자리에는 있어야할 자기 집은 없고 보기에도 웅장한 커다란 대궐 같은 기와집이 새로 지어져 있었다. 김선비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놀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 집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 집이 아니었다. 이게 바로 가장으로써 책임을 방기하고 혼자만의 쾌락과 호사를 누리기 위하여 헛꿈을 쫓아 살아온 대가란 말인가!

“허억! 이럴 수가! 우리 집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필시 우리 식구들이 큰일을 당했단 말인가!”

김선비는 노란 현기증이 대번 눈앞에 아른거리고 두 다리에 힘이 탁 풀려 그 자리에 짚단처럼 ‘풀썩!’ 고꾸라져 넘어질 뻔 했다. 김선비는 심장이 덜컥 멎는 듯 망연자실하여 벌린 입을 닫지 못하고 넋 나간 듯 멍하니 혼자소리를 하며 그곳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계속>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희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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